집값을 잡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주택 공급을 늘리는 것이다. ‘물량 앞에 장사 없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집 지을 땅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서울에선 재개발·재건축이 사실상 유일한 주택 공급처다.
특히 재건축은 주택 공급의 주요 파이프라인으로 통한다. 한 번에 신규 주택을 대규모로 공급할 수 있어서다. 재개발은 일부 구역을 빼곤 대부분 중소 단위인 데다 조합원도 상대적으로 많아 주택 공급 효과가 덜한 편이다. 재건축을 하면 통상 기존보다 가구 수가 20~30%가량 늘어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정부가 지난 8월 서울·수도권 주택 공급 대책의 핵심 방안으로 공공참여형 고밀재건축(공공재건축)을 내놓은 것도 이 때문일 게다.
공공재건축은 아파트 최고 층수를 35층에서 50층으로 올리고 용적률도 300∼500%까지 높이는 대신 늘어난 용적률의 50~70%를 공공분양 및 임대주택으로 기부채납(공공기여)하는 구조다. 정부는 이를 통해 향후 5년 동안 서울 도심에 5만 가구를 공급할 수 있을 거라고 봤다. 이는 8·4 대책에서 밝힌 추가 주택 공급 물량(13만2000가구)의 3분의 1에 달하는 규모다.
그런데 정부 뜻대로 흘러가지 않고 있다. 70곳에서 사업 참여 의사를 밝힌 공공재개발과 달리 공공재건축을 하겠다는 곳은 얼마 안 된다. 정부와 서울시에 따르면 공공재건축 사전건설팅(사업성 분석)을 신청한 단지는 총 15곳이다. 이 중 대치동 은마아파트(4424가구), 잠실주공5단지(3930가구), 청량리 미주아파트(1089가구) 등 규모가 큰 재건축 추진 단지들은 모두 조합원이나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발을 뺐다. 이로써 사전컨설팅을 받게 되는 단지 규모는 1만3000여 가구에서 3000가구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정부는 최근 기부채납 비율을 최대 70%에서 50%로 낮추겠다고 ‘당근책’을 내놨지만, 시장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하기만 하다. 오히려 500가구 미만의 소규모 단지들까지 반대 여론 때문에 동요하는 분위기여서 공공재건축에서 발을 빼는 단지가 더 늘어날 수 있다.
공공재건축의 흥행 실패는 예견됐다는 게 업계 반응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실익이 없다’는 것이다. 공공재건축은 용적률이 두 배가량 늘어나지만, 그만큼 임대주택을 들여야 한다. 고급 아파트 단지를 짓고 싶은 조합이나 주민들에게 임대주택 공급은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다. 양적 증가에만 초점이 맞춰진 용적률 상향으로 ‘빽빽한 닭장 단지’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조합원 입장에선 달갑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정부는 공공재건축 카드를 꺼내들면서 ‘용적률 증가에 따른 개발이익의 90%까지 환수한다’는 단서 조항도 달았다. 재건축 추동 요인인 개발이익을 없애면 어느 조합이 공공재건축 사업에 뛰어들겠는가.
이대로 가면 공공재건축 정책 실패는 불 보듯 뻔하다. 공공성을 지나치게 강조해선 주민 참여를 이끌어낼 수 없고, 결국 수요자들이 원하는 곳에 주택을 공급할 수도 없다.
늦었지만 정부는 재건축 조합의 구미를 당길 획기적인 개선안을 내놔야 한다. 공공재개발처럼 공공재건축을 하면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나 분양가 상한제 같은 규제를 적용받지 않게 하고 임대주택 건립 비중도 확 낮춰줄 필요가 있다.
이참에 민간 재건축에 대한 정부 시각도 바꿔야 한다. 재건축 규제 완화가 ‘강남과 부자들을 위한 정책’이라고 불편해하는 이념적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얘기다. 재건축 족쇄를 풀면 일시적으로 집값이 뛰고 그 혜택이 ‘가진 자’(주택 소유주)에게 갈 수도 있겠지만 장기적으론 공급을 늘려 집값 안정에 기여할 수밖에 없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근본적인 대책을 회피하는 것은 집값 불안을 미래에 떠넘기는 무책임한 일이다.
지금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공공재건축보다 민간 재건축 활성화다. 공공부지 확보가 가능한 도시 외곽과 달리 도심에선 민간 영역의 재건축 사업이 활발하게 추진되지 않고선 안정적인 주택 공급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급 규제를 완화해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곳에 아파트 공급이 꾸준히 이어질 것이란 확실한 신호를 시장에 보내지 않고는 집값 안정도 전세난 해소도 도모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