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상의 캐릭터를 의미하는 '아바타' 콘텐츠가 인기를 끌고 있다. 게임 '리그오브레전드'의 캐릭터로 만들어진 가상의 아이돌 그룹인 'K/DA'부터 SM엔터테인먼트의 신인 걸그룹 '에스파'까지 실재 인물에 더해 2D나 3D로 만들어진 가상의 캐릭터가 콘텐츠의 중심이자 주인공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실재 인물이 아닌 가상의 캐릭터가 콘텐츠의 중심으로 등장하는 형식은 언뜻 보면 새로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형식의 장르는 이미 '버추얼 유튜버(버추얼 크리에이터)'라고 불리며 콘텐츠의 한 장르로 당당히 인정받고 있다.
버추얼(virtual·가상) 유튜버 또는 크리에이터(방송인)는 2016년 일본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장르로, 실제 사람이 아닌 가상의 움직이는 2D 혹은 3D 캐릭터가 등장해 방송을 진행하는 형식으로 이뤄진다. 영상 속 가상의 캐릭터는 연기자의 몸에 센서를 부착해 마치 사람처럼 움직이고 말을 한다. '버튜버'·'브이튜버'(V tuber) 등으로도 불리는 버추얼 유튜버들은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누리며 콘텐츠의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버추얼 유튜버는 이미 사람보다도 좋은 결과를 얻고 있다. 유튜브 통계 분석 서비스 '플레이보드'에 따르면, 3일 기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슈퍼챗(유튜브 후원금)을 받은 유튜버는 버추얼 유튜버인 '키류 코코'(Coco Ch.)다. 82만2000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키류 코코가 지금까지 받은 누적 후원금은 총 14억2450만 원이다. 키류 코코 외에도 87만 명이 구독하는 '미나토 아쿠아', 72만 명의 구독자가 있는 '우루하 루시아' 등 총 6명의 버추얼 유튜버가 후원금 순위 10위 안에 들었다.
버추얼 유튜버 선두주자로 평가받는 일본은 2020년 기준으로 대략 1만 명 이상의 버추얼 유튜버가 활동 중인 것으로 추산된다. 이 중 '키즈나 아이'는 처음으로 '버추얼 유튜버'라는 개념을 표방하며 성장의 토대를 일군 것으로 평가받는다. 2016년 12월 등장한 키즈나 아이는 활동을 시작한 지 1년 만에 구독자 수 100만 명을 돌파했으며, 2020년 12월 2일 기준으로 287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버추얼 크리에이터의 방송은 어떻게 진행될까. 기본적으로 버추얼 크리에이터의 방송은 생방송으로 진행된다. 2D 또는 3D로 구현된 가상 캐릭터가 등장해 게임을 하거나 노래를 부르고 공연을 하기도 하며, 시청자들과 채팅을 통해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대화를 나눈다.
유튜브와 트위치에서 방송하는 버추얼 크리에이터 A 씨는 목소리와 표정이 있는 캐릭터를 버추얼 콘텐츠의 매력으로 꼽으면서 "실제 얼굴이 노출되지 않는 방송은 목소리만 송출이 되다 보니 표현에 제약이 있는데 캠 방송처럼 표정도 함께 나와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버추얼 크리에이터가 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A 씨는 아이폰의 'Face ID'(페이스 아이디) 기능을 활용해 방송을 송출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버추얼 활동을 혼자서 준비하기에는 매우 힘들다"라며 "개인이 3D 모델링이나 그림에 자신이 있는 게 아니면 다른 디자이너의 손을 필수적으로 빌려야 한다. 이에 따른 금액과 퀄리티도 천차만별"이라고 덧붙였다.
A 씨는 국내 버추얼 크리에이터에 대한 부족한 인식이 아쉽다고 토로했다. 그는 "흔히들 보는 애니메이션에도 장르에 따른 취향이 갈리는데 방송에 대한 취향도 갈릴 수밖에 없다고 본다"면서도 "버추얼 방송에 대한 인식이 유독 부족한 이유는 많이 접해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애니메이션과 게임을 좋아해도 버추얼 방송은 꺼리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고 아쉬워했다.
버추얼 크리에이터의 인기는 우리나라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구독자 93만 명의 게임 영상 전문 유튜버 '맥큐뭅'을 비롯해 23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춤 영상 전문 유튜버 '아뽀키'까지 이미 다양한 버추얼 크리에이터가 인기를 얻고 있다.
게임회사 '스마일게이트'가 2017년 선보인 국내 최초 버추얼 크리에이터 '세아'(SE:A)는 현재 7만 명의 유튜브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애초 세아는 스마일게이트의 게임을 홍보하기 위한 임시 캐릭터였다. 하지만 콘텐츠가 생각보다 좋은 반응을 얻자 다음 해 독립 채널을 열고 정식 유튜버로 데뷔했다. 올해 7월엔 국내 다중채널네트워크(MCN) 기업 '샌드박스'와 전속 계약을 맺었다.
스마일게이트 관계자는 버추얼 크리에이터에 대해 "상상력에 따라 다양한 설정을 가미하는 것이 가능하고 방송 소재의 선택에도 자유도가 높은 것이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관계자는 "버추얼 크리에이터 존재 자체가 가지는 신선하고 색다른 매력이 있다"며 "방송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얼굴이 노출되지 않기 때문에 방송을 시작할 때 기술적 여건만 갖춰지면 방송에 대한 심리적 진입장벽이 낮다는 장점도 있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해외와 비교해 우리나라에서 버추얼 크리에이터의 입지가 좁은 이유에 대해선 "현재 버추얼 크리에이터가 가장 대중화 돼있는 일본의 경우 한국보다 훨씬 앞서 버추얼 크리에이터라는 개념이 등장했으며 '캐릭터'에 열광하는 그들의 문화적 특수성도 고려해봐야 한다"면서도 "버추얼 크리에이터 시장은 이제 개화하기 시작한 블루오션 시장이며 세아의 뒤를 이어 다양한 크리에이터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는 만큼 높은 잠재력이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버추얼 크리에이터 시장을 어떻게 전망하고 있을까.
가상현실(VR) 콘텐츠 전문가인 이승훈 영산대학교 문화콘텐츠학부 교수는 버추얼 크리에이터의 강점에 대해 "기존 크리에이터의 경우 본인을 중심으로 개인화를 통한 콘텐츠 제작이었다면, 버추얼 콘텐츠 크리에이터는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바탕으로 한 자유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승훈 교수는 "버추얼 콘텐츠와 관련해선 콘텐츠의 소재나 제작에 대한 선입견·제약 등이 적고, 넓은 구독자층을 보유한 일본이 선도하고 있다. 미국·유럽 등에서도 활발하게 콘텐츠 제작 및 활동들이 이뤄지고 있다"며 "우리나라의 경우엔 아직 선입견이 존재하고, 주제나 내용의 접근에 있어 제한이 많다 보니 상대적으로 늦게 성장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향후 우리나라의 버추얼 콘텐츠 시장의 전망에 대해선 "포스트 코로나 상황에서 일상생활의 여러 영역이 '언택트'(Untact) 방식으로 변화하면서 버추얼 콘텐츠에 대한 수요나 관심도 증가하고 있다"며 "기존에 만들어진 콘텐츠가 버추얼로 재생산되는 경우도 있고 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도 버추얼 콘텐츠를 활용하려고 하는 움직임도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영향이 향후 시장 성장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고 예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