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수준 미달 공공조형물 낳는 잘못된 입찰 시스템 바꿔야”
정부세종청사의 ‘흥겨운 우리 가락’, 경북 포항 ‘은빛 풍어’, 대구 ‘잠든 원시인상’. 모두 세금 낭비 논란에 휩싸였던 지자체 조형물이다. 대중들에게 ‘저승사자’로 알려졌던 정부세종청사와 포항의 조형물은 ‘흉물 논란’ 끝에 지난해 결국 철거됐다.
지방자치단체 공공조형물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주변 경관과 어우러지지 못하고 미학적으로도 부족하다는 이유다. 지역 주민들의 공감대를 얻지 못한 공공조형물은 ‘세금 낭비’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미술계에서는 수준 이하의 공공조형물이 양산되는 원인으로 입찰 시스템을 지적한다. 예술가가 직접 참여하기 어려운 입찰 조건과 작품의 예술성과 상관없는 정량적 평가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현재 지자체 공공조형물은 조달청 입찰 시스템을 통해 사업자를 선정한다. 공공 입찰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지자체 입찰 관련 법령인 지방계약법과 시행령에 따른 몇 가지 조건을 통과해야 한다.
첫 번째 조건은 산업디자인, 환경디자인, 종합 디자인 전문업체로 ‘사업자등록’을 한 업체여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미술협회 부이사장을 맡고 있는 박찬걸 충남대학교 조소과 교수는 첫 번째 조건이 “저명한 조소과 교수들의 참여를 원천적으로 막는다”고 말했다. 국·공립대학 교수들은 공무원법에 따라 사업자등록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립대학 교수나 순수 예술가들도 전문 업체로 사업자를 내기는 쉽지 않다.
두 번째 조건은 ‘직접생산확인 증명서’다. 직접생산확인 증명서란, 중소기업의 직접 생산 여부를 확인한 뒤 중소기업중앙회가 발급하는 증명서다.
증명서를 받으려면 먼저 제품 생산 공장이 있어야 한다. 또한 설비 및 장비, 공장 면적, 인력 기준 등을 통과해야 한다.
세 번째 조건은 석공 사업면허·전문건설업 면허·조경시설물 설치 면허를 비롯한 각종 사업 면허다.
박찬걸 교수는 “위 면허는 예술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면허가 아니다. 이 같은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업체는 소수에 불과해 입찰 과정에서 변별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나라장터에서 낙찰된 공공조형물 제작·설치 용역 11건의 평균 경쟁률은 ‘5.36 대 1’에 불과했다.
조형물의 창의·예술성만이 아닌 업체의 경영 실적을 평가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받고 있다.
공공조형물 평가 기준은 작품의 예술성을 평가하는 ‘정성적 평가’와 업체의 사업수행 실적·경영상태·신용평가등급을 평가하는 ‘정량적 평가’로 나뉜다.
지자체마다 세부 항목이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보통 정량적 평가는 100점 만점 중 20점에 해당한다. 그중 지난 사업에 참여했던 실적 부분이 6~10점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박찬걸 교수는 “소수점 차이로 우선 협상 대상자가 바뀌는 상황에서 사업 수행 실적 점수는 당락에서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 이 같은 기준이 신생 업체의 참여를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면허 조건을 갖춘 소수 업체만 입찰할 수 있는 시스템 역시 경쟁의 변별력을 떨어뜨려 수준 이하의 공공조형물을 만들게 한다. 박 교수는 “최근 몇 년간 언론에서 부정적으로 다루고 있는 조형물은 대부분 입찰방식으로 제작된 작품”이라고 말했다.
극소수만 참여할 수 있는 입찰 시스템은 비리의 씨앗이 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강원도에서는 공공조형물 공모 비리 사건이 발생해 관련 공무원들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한 업체가 브로커와 손잡고 관련 공무원과 심사를 맡은 대학교수를 매수했다가 적발됐다.
미술계는 공공조형물의 입찰 참여 기준을 완화하고 공모제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찬걸 교수는 “공공조형물을 사업이 아닌 예술 작품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공미술은 우리 모두와 시민을 위한 것”이라면서 “시스템의 문제가 만들어낸 일부 수준 이하의 조형물 때문에 조각계 전체가 폄훼되는 가슴 아픈 현실 속에 있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공공조형물은 단순한 치적 사업을 넘어 지역의 또 다른 가능성이 될 수 있다. 시민을 위한 예술을 넘어 경제 효과를 창출하는 또 하나의 산업으로 말이다.
아니쉬 카푸어의 ‘클라우드 게이트’(Cloud Gate, 2006)는 작품 하나로 미국 시카고 밀레니엄 파크를 세계적인 관광지로 만들었다.
박찬걸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는 ‘망치질하는 남자’(Hammering man, 2002)나 영종도의 파라다이스 호텔 사례가 좋은 예시가 될 수 있다”며 “앞으로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될 부분인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