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입맛은 쉽게 변한다. 그 속도만큼이나 발 빠르게 움직이는 이들이 있다. 소비자가 무엇에 열광하는지 예민하게 포착해 먹거리에 접목시키는 식품 상품기획자(MD)들이다. 누군가는 유행을 좇지만, 어떤 이는 유행을 만들어낸다. ‘비비빅 흑임자’ 시리즈부터 최근 ‘삼육두유 콜라보’ 제품을 만든 자타공인 ‘할매입맛’ 원조인 이용구 BGF리테일 스낵식품팀 MD가 그 주인공이다.
이용구(36) MD는 2010년 BGF리테일에 발을 들였다. MD가 꿈이었지만, 그가 처음부터 상품기획자였던 것은 아니다. 당시 맡았던 직무는 주류 마케팅. 수제맥주 붐이 일면서 CU가 시도한 이색 맥주 프로모션에 참여했다. 이 MD는 “당시 ‘퇴근길 맥주’ 시리즈인 강서·달서 맥주 등의 제품을 마케팅했다”고 설명했다.
MD 직무로 옮긴 뒤부터 일의 재미가 높아졌다. 그는 “마케팅은 이미 제품이 있는 상황에서 프로모션 위주로 활동하는 것이라면, MD는 처음부터 제품을 계획하고 기획한다”라면서 “아예 무에서 유를 만드는 작업이다 보니 일이 훨씬 더 잘 맞고 큰 재미를 느꼈다”고 했다.
최근 ‘할매입맛’ 트렌드도 이용구 MD의 작품이다. 유행의 포문을 연 '비비빅 흑임자', '찹쌀떡 흑임자' 등 흑임자 시리즈 전부 그의 손을 거쳤다. 그는 "소비자들은 쉽게 질려한다. 이전에는 마라맛 등 매운 맛이 강타했다면 이후에는 순한 맛이 유행할 것으로 봤다"면서 "투게더 흑임자, 빵빠레 흑임자, 쌍쌍바 미숫가루 등 관련 상품이 꾸준히 추진됐다"고 했다.
지난 여름 ‘삼육두유 콜라보’를 기획할 당시 보수적이기로 소문난 식품기업을 움직이기가 마냥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았다. 그는 "보통은 담당자 선에서 의사결정이 이뤄지는데 삼육두유는 아니었다"라면서 "아주 이례적으로 담당MD, 팀장님 등을 대동해 천안에 있는 공장까지 찾아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식품기업을 상대로 한 그의 거침없는 행보는 스스로의 기획에 대한 자신감과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이 MD는 “처음부터 확신이 있었다”라면서 "삼육두유 본사 임원을 포함해 5명을 상대로 다대다 미팅을 했는데 처음 만든 시제품을 시식하며 서로 윈윈하는 전략이라고 설득했다"고 덧붙였다. 현장에서 바로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결과는? 이 MD는 "(삼육두유 측에서) 출시 후 매주 얼마 팔려나갔는지 전화가 올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라면서 "삼육두유의 매출도 동반상승한 걸로 안다"고 귀띔했다.
스낵 담당이지만 마트에서 조미료, 소스 코너를 서성이며 끊임없이 콜라보 아이디어를 모색하는 이용구 MD. 그가 향후 구상하는 제품은 뭘까. "건강과 맛을 동시에 잡는 길티-프리(guilty-free) 먹거리를 기획해보고 싶습니다. 과정은 어렵겠지만 '이 분 월급 두 배 받으세요' 같은 소비자들 반응이 올 때 가장 희열을 느끼죠. 제가 일하는 원동력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