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지금] 21세기 新대항해시대

입력 2020-12-22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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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정 동아대학교 국제전문대학원 교수

영국의 항모전단 ‘퀸 엘리자베스’의 일본 근해 장기 파견, 그리고 프랑스와 독일의 인도-태평양 전략 참여 등 유럽 강대국들의 행보가 발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이는 대항해시대, 제국주의시대가 아닌 바로 2020년의 일이다.

유럽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탄생, 발전시키고 서양화가 곧 근대화라는 신념하에 전 세계에 이를 보편적인 사회제도로 보급시켰다. 이 과정에서 제국주의 식민 문제와 1·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유럽은 이후 평화와 안정의 대륙으로 거듭났다. 유럽과 유럽연합(EU)은 인권과 민주주의 제도를 수호하고, 환경 문제, 특히 신기후체제를 이끌며 규범적 가치를 선도하는 지역으로 우리에게 인식된다.

하지만 최근 유럽 각국은 국제정치·안보와 전통적 힘의 대결에서 밀리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적어도 2020년에 이들은 확고하고 결연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우선 프랑스와 독일은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해 온 인도-태평양 전략에 앞다투어 참가하고 있다. 인도-태평양이라는 용어는 이미 1920년대부터 각 지역의 이해관계를 위해 사용되어 왔으나, 미국은 2017년부터 아시아-태평양이라는 기존의 지정학적 용어를 대체하는 개념으로 사용해 왔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일본, 호주, 인도를 전략적 지역으로 묶어 안보를 수호하려는 신안보정책이다. 인도-태평양의 전략적 범위는 미국 서해안부터 인도 서해안까지를 포함하며, 해당 지역 내 항행 및 비행의 자유, 분쟁의 평화적 해결 추구를 목표로 한다.

해당 지역 내에는 10대 안보 최상위국 중 7개국이 위치해 있으며, 6개의 사실상 핵보유국이 포함되어 있다. 더불어 전 세계 해상 교통량의 60%가 이 지역을 통과하고 있어 지정학적 중요성 또한 간과할 수 없다. 미국은 인도-태평약 전략을 제시하며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다. 인도-태평양 전략은 중국이 야심차게 전개하고 있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에도 강력한 대응을 시사한다. 즉 미국은 정치·안보 및 시장경제에서 해당 지역을 중국의 영향하에 두지 않을 것이며, 중국이 현 질서를 무너뜨려 세력을 확장하려 한다면 즉각적 대응을 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이에 미국과 동맹 관계에 있는 유럽 각국이 안보 태세를 강화하기 위한 공조에 나서고 있다.

우선 프랑스는 스스로를 인도-태평양 전략국가로 인식하고 있다. 프랑스 해외령을 통해 배타적경제수역(EEZ)의 93%를 인도-태평양 지역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프리카 지부티 등 프랑스군이 유일하게 주둔하던 지역에 중국군이 팽창하는 것을 묵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마크롱 대통령은 2019년 6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참여하는 ‘EU-아시아 연계성 전략(European Union-Asia Connectivity Strategy)’을 발표하였다. 이어 독일도 올해 9월 인도-태평양 전략 참가를 선언했다. ‘독일의 인도-태평양 전략(German’s Indo-Pacific Strategy)’을 발표하고, 2020년 하반기 유럽위원회 의장국으로서 중국 시장 대응 및 다자적 경제협력 원칙의 수호를 이끌고 있다. 브렉시트로 EU를 빠져나간 영국 또한 예외적이지 않다. 영국 항모전단은 내년 초부터 일본 난세이(南西)제도 주변의 서태평양에서 미-일과 함께 연합훈련을 수행하며 장기 파견 체제에 들어간다고 발표하였다. 서태평양은 뿌리깊은 남중국해 문제와 맞닿아 있는 지역으로 미국 이외 주변국 군대가 진주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영국은 중국이 ‘홍콩 국가보안법(홍콩 보안법)’을 통해 사실상 홍콩의 자치와 일국양제(一國兩制) 보장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고, 이민법 개정을 통해 내년부터 영국해외시민(British National Overseas·BNO) 여권을 소지한 홍콩시민의 이민을 수용하기로 하였다.

유럽 강대국들의 이 같은 움직임은 단순히 중국에 대한 대응처럼 보이나, 실은 미중 갈등에 따른 불안정성을 줄이고 국제구도에서 명확한 삼자관계, 다자적 구도를 확립하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유럽 각국이 아시아 지역에 대해 대항해를 시작하며 정치안보 부문에서 적극적 관여의 자세를 견지하는 이때, 한국의 전략적 외교 또한 더욱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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