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증폭(PCR) 방식에 집중됐던 코로나19 진단키트의 판도가 바뀌고 있다. 정부는 최근까지 가장 정확도가 높은 PCR 검사법을 표준으로 삼았지만,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하루 1000명을 넘나드는 재유행 국면에 들어서자 대통령이 나서서 “신속 항원검사법을 적극 활용하라”라고 지시했다.
코로나19 진단은 분자 진단인 PCR 방식, 면역 진단인 항원 진단과 항체 진단 등 세 가지 방법으로 나뉜다. PCR 방식은 코로나19 유전자를 증폭해 검사하는 만큼 검체에 바이러스가 소량만 있어도 감염 초기부터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어 민감도와 특이도가 각각 98% 이상, 100%로 높다. 다만 검사 결과가 나오는 데 꼬박 하루가 걸린다. 이에 비해 신속항원ㆍ항체 진단키트는 PCR 검사보다 정확도는 낮지만, 10~30분 안에 진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방역 당국은 진단검사 정확도를 우선시하며 PCR 방식만 허용했으나 최근 확진자 수 폭증으로 14일부터 신속항원검사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했다. 임시 선별진료소뿐 아니라 응급실, 중환자실, 의료 취약지 소재 의료기관 등 일선 현장에서 신속항원검사를 실시할 수 있도록 검사비용의 50%를 건강보험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또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민간 의료기관에서도 비급여로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23일 기준 국내에서 정식허가를 받은 신속 진단키트는 SD바이오센서와 수젠텍 2개뿐이다. 식약처는 지난달 초 SD바이오센서의 신속 항원ㆍ항체 진단키트를 정식허가한 데 이어 21일 수젠텍의 신속항체 진단키트로 정식허가했다.
실제 의료현장에서는 SD바이오센서의 신속항원 진단키트만 사용되고 있다. 신속항체 진단키트는 식약처에서 정식허가를 받을 때 사용 목적이 제한적이라 코로나19 진단검사에 활용하기 어렵다. SD바이오센서 측은 “신속항원 진단키트와 달리 신속항체 진단키트는 일반 병원에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식약처에서 허가받을 때 ‘항체 생성 확인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의료기기’를 목적으로 승인받아 코로나19 진단검사에 사용하기엔 사용목적이 제한적이다. 식약처는 코로나19 진단에 사용하기 위해 ‘신의료기술심사'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한다고 통보했고, 현재 이와 관련해 이의신청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신속항체 진단키트를 정식허가 받은 수젠텍도 실제 의료현장에서 쓰이기 위한 작업에 한창이다. 수젠텍 측은 “국내판매유통을 위해 의료기관과 협의 중이고, 보험수가 결정 등에 대한 부분은 관련 당국에서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유럽 등 주요 선진국과 달리 국내는 아직 정식허가를 받은 신속항원ㆍ항체 진단키트가 제한적이다. 식약처는 현재 정식허가를 신청해 심사 중인 신속항원 진단키트는 12개고, 신속항체 진단키트는 17개라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허가심사 기간은 4개월가량 걸린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PCR 방식만 고집했던 정부의 대응이 잘못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약개발 전문가인 배진건 박사(이노큐어테라퓨틱스 수석부사장)는 “신속 항원ㆍ항체진단키트는 무증상자를 가려내기 위해 진작 썼어야 했다. 정확도가 PCR 검사법보다 10% 정도 떨어진다고 해서 도입이 늦었는데 확진자를 빨리 가려내지 못해 이렇게 바이러스가 급격히 퍼진 것이다. 겨울에 재유행이 온다는 사실은 이미 많은 전문가가 경고했던 바인데 대책이 없었다”라며 “이제라도 신속 항원ㆍ항체진단키트를 확대 도입해서 시간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라고 말했다.
선별 진료소나 의료기관에 방문할 필요 없이 스스로 감염 여부를 파악할 수 있는 ‘가정용 진단키트’를 도입해야 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무증상 감염률이 높은 상황에서 왜 PCR 검사만 고집하나. 교도소나 요양원 등 전수조사가 필요한 곳이나 응급수술 환자 등 빠르게 신속 검사가 필요한 집단에 한해 가정용 진단키트 도입이 필요하다”라며 “가정용 진단키트는 접근성이 좋고 반복적으로 검사할 수 있어 필요 목적에 따라 허용하는 식으로 가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천 교수는 또 “환자 스스로 검체를 채취하는 게 쉽지 않다며 반대하기도 하는데 미국에서 최근 승인한 가정용 진단키트는 검체 채취 면봉이 짧다. 스스로 검체를 채취할 수 있게끔 편리하게 만들면 된다”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PCR 방식보다 정확도가 낮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바이러스 감염 기간이 길어지면 바이러스 양이 많아질수록 신속항원 검사의 정확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라고 반박했다.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도 전날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가정용 진단키트 도입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권 후보자는 “아직 식약처에서 자가 진단키트로 활용할 수 있게 허가받은 제품은 없지만 필요성은 인정된다. 어떤 것을 대상으로 할 수 있을지 정부 내부에서 검토하겠다”라고 말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집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는 가정용 진단키트를 지난달 처음 승인했다. 그간 FDA가 승인한 가정용 진단키트는 감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연구소로 키트를 보내야 했다. FDA는 지난달 미국의 제약회사 루시라헬스가 제조한 가정용 코로나19 진단키트를 승인한 데 이어 15일(현지시간) 호주의 제약회사 엘룸이 개발한 가정용 코로나19 진단키트도 승인했다.
앞서 루시라가 개발한 진단키트는 일반인이 살 때 의사의 처방전이 필요하지만, 이번에 승인된 엘룸의 진단키트는 처방전 없이 약국에서도 구매가 가능하다. 코에 면봉을 넣어 검체를 채취한 뒤 스마트폰에 부착한 진단키트로 감염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데 검사 결과를 확인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5분이다.
신속함과 편리성에 초점을 맞춘 코로나19 진단키트 수요가 높아지자 국내에서도 이를 반영한 진단키트를 속속 내놓고 있다. 분자진단 전문기업 씨젠은 타액을 통해 일반인들이 쉽게 코로나19를 검사할 수 있는 진단키트를 개발하겠다고 선언했다. 체외진단기기 전문기업 피씨엘은 가정용 코로나19 항체 진단키트 출시를 앞두고 있다. 현재 FDA의 긴급사용승인절차를 밟고 있고, 국내 식약처에도 정식허가를 신청해 심사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