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 초기부터 물밑 작업…4월부터 계획 가동
22일(현지시간) 싱가포르 방송 CNA에 따르면 전날 싱가포르 창이 국제공항에 화이자의 코로나19 백신 첫 물량이 도착했다. 전 세계적으로 백신 확보전이 치열한 가운데 아시아에서 ‘나홀로’ 백신 공수에 성공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싱가포로의 저력은 한 가지 의문에서 출발했다. 전문가 패널을 이끈 벤자민 싯 교수는 “우리가 구매하고 싶을 때 구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미국, 유럽연합(EU) 등 강대국이 백신 확보에 사력을 다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래서 필수적으로 사전 주문 예약자에 이름을 올리기 위해서 최대한 빨리 결정해야 했다”면서 “그게 선구매 계약을 할 수 있었던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싱가포르는 4월부터 백신 확보 계획을 가동했다. 확진자가 수천 명까지 치솟기도 전에 잰걸음에 나선 것이다.
우선 백신 관련 정보가 필요했다. 경제개발청(EDB)은 18명의 공공 및 민간 분야 과학자와 의사로 구성된 ‘치료법 및 백신 전문가 패널’을 구성했다. 그들의 임무는 전 세계 유망 백신 후보를 조사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160여 개 후보 가운데 기술, 기록, 생산 시간표 등을 검토해 35개까지 범위를 축소했다.
조기에 유용한 백신 후보 물질로 꼽힌 것은 모더나, 화이자·바이오엔테크, 중국 시노백이 각각 개발한 백신 세 가지였다. 이 가운데 패널은 ‘RNA (리보핵산)’ 방식에 관심을 가졌다. 생산이 쉬워 임상시험도 일찍 착수할 수 있고 대량 생산도 가능할 것이란 판단에서다. 화이자와 모더나의 백신이 ‘메신저 리보핵산(mRNA)’ 방식이다. 시노백은 불활성화 백신이다.
특정 후보군으로 좁혀지자 싱가포르 정부는 4월 말 백신 조기 확보를 목표로 ‘백신 및 치료법 기획단’을 구성했다. 기획단은 EDB가 그동안 구축했던 관계를 활용, 백신 개발업체들과 광범위한 접촉에 나섰다.
이후 6월 모더나와 첫 선구매 계약 체결에 성공했다. 합의를 위해 선금도 지불했다. 이어 8월 시노백, 화이자와도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이밖에도 싱가포르는 백신 포트폴리오 다양성 차원에서 40개의 비공개 협정을 더 맺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11일 화이자 백신에 대해 긴급사용을 승인하자 15일 리셴룽 싱가포르 국무총리는 보건당국이 화이자 백신 사용을 승인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화이자 백신은 12월 말 도착 예정이며 나머지 백신도 수개월 내 도착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또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내년 3분기까지 싱가포르 국민 전체가 백신 접종을 받을 수 있다고 자신했다.
싱가포르의 백신 선구매 협상 과정에는 늘 불확실성이 따라다녔다. 구매 계약 당시는 초기 임상시험이 진행 중이었고 사용 승인을 받을지 미지수였다. EDB는 “그럼에도 리스크를 조정하면서 데이터에 근거해 모든 걸 결정했다”고 강조했다.
싱가포르는 코로나19 방역 모범국에서 이주노동자 기숙사발 집단 감염으로 한 때 위기가 있었지만, 앞날을 내다보고 발 빠르게 행동했으며 위험을 감수한 결단, 철저한 준비가 지금의 성과를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레오 입 기획단장 말처럼 요행은 결코 없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