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어뒀던 주식이 올라 캠핑카를 사는데 큰 보탬이 됐죠. 네 가족의 꿈을 이룰 수 있게 됐습니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 하더군요.”(대기업 직장인 P 모씨ㆍ서울 마포구)
증시 활황에 따른 부의 효과(wealth effect)로 소비현장 곳곳에서 씀씀이가 달라지고 있다. 천정부지 치솟은 부동산은 현금화하기 힘들어 사정이 다르다고 해도 적어도 증시만은 부의 효과를 분명 플러스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기본 상품 대신 고가품을, 단품 대신 풀세트를, 기왕이면 멋지고 폼나는 프리미엄 상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12일 코스피는 3000으로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최대 수혜자인 회사원들이나 증권가 일대 직장인들은 고급 슈트 정장에 명품 시계를 사면서 여유를 즐기는 모습이다. 모처럼 여윳돈이 생긴 가장들은 와이프에게 선물할 가방을 새로 사고 가족을 위한 캠핑카 구매, 고가 의류에 지갑을 열고 있다.
주가 상승은 백화점의 고가 상품 판매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세대 간에 소비 패턴도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들어 백화점 실적이 ‘턴어라운드’ 한 것으로 예상된다. 의류, 식품 등에 대한 매출은 감소했지만 명품이나 대형 가전 등 ‘사치재’ 소비는 오히려 늘어났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충격을 지워가고 있다. 오린아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코로나19 확산 초기 대비 매출 감소폭은 대체로 안정되는 상태”라면서 “명품과 리빙은 여전히 두자릿 수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씀씀이도 커졌다. 지난해 11월 국내 주요 백화점 57곳의 1인당 구매단가는 11만7882원으로 전년 동월 9만4439원 대비 25% 가까이 늘어났다.
특히 백화점 매출에서 명품 비중이 증가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백화점 총매출 가운데 해외유명브랜드 비중이 28.9%로 집계됐다. 매출액은 작년보다 17.9% 증가했다. 잡화와 여성캐쥬얼 매출이 지난해보다 각각 24.8%, 25.2% 감소한 것과 비교하면 명품 선호 현상이 뚜렷해진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현상은 국내 증시가 가파르게 뛰기 시작한 7~8월부터 뚜렸했다.
주가 상승에 따라 고급 가전제품 구매에 돈을 아끼지 않는 ‘통 큰 고객’도 늘어나는 추세다. 전자랜드에서는 지난해 식기세척기와 건조기 판매량이 전년대비 각각 150%, 33% 증가했다. 같은 기간 롯데하이마트에서는 로봇청소기가 65%나 더 팔렸다. 식기세척기의 경우 80~100만원대로 고가다. LG전자 ‘오브제컬렉션’의 경우 온라인 최저가 기준 147만원으로 인기 양문형냉장고와 맞먹는다. 국산 로봇청소기도 대부분 60~80만원대에 가격이 형성돼있다.
대형가전의 구매도 늘었다. 전자랜드에 따르면 지난해 냉장고는 77%(이하 전년 대비), TV 68%, 드럼세탁기는 16% 판매가 늘었다.
경기를 읽을 수 있는 지표로 새롭게 떠오른 아이새도우 색깔도 변했다. 불황 시 여성들이 비교적 부담 없는 값에 화려하게 자신을 꾸밀 수 있는 빨간색 립스틱은 코로나19 영향으로 뒷전으로 밀린 대신 여유로워 보이는 파스텔 색조의 눈화장 제품 판매가 늘어난 것.
한국수입자동차협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신규 등록된 수입차는 27만4859대로 전년 판매량(24만4780대)보다 12.3%가 늘어났다.
볼보코리아 관계자는 “지난해 매출은 전년과 비교해서 21% 정도 증가했다”면서 “특히 한국 시장에서 볼보 판매량이 대폭 늘었는데, 명품에 대한 소비도 늘어났듯이 젊은층들 사이에서 외제차 구입이 늘어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골프를 즐기려는 사람도 늘었다. 회원권114에 따르면 지난해 1억원 미만 골프회원권은 평균 가격 상승률이 4.5%였다. 1억~3억원 미만 골프회원권 평균 가격상승률은 21%, 3억~7억원 미만 골프회원권 평균 가격 상승률은 20%, 7억원 이상 골프회원권 평균 가격 상승률 36%였다.
최근 ‘사치재’에 대한 소비가 늘어난 것은 주식, 부동산 등 자산가격 상승에 따른 ‘부의 효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소비가 미래 소득에 대해도 영향을 미친다는 경제학 용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주식 수익률이 좋아지면서 실제 매도를 통해서 수익을 실현하지 않았지만 ‘돈을 벌었다’는 심리가 높은 소비로 이어지고 있다”면서 “최근 ‘필수재’보다 ‘사치재’ 소비가 증가하고 있는 현상은 ‘부의 효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