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중국 제재에 대만 파운드리만 바라보는 상황
24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피터 알트마이어 독일 경제에너지부 장관은 왕메이화 대만 외교부 장관에게 차량용 반도체 부족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서한을 보냈다. 해당 서한에 따르면 알트마이어 장관은 당장 시급한 반도체 생산과 납품은 물론 중장기적으로 안정적 수급도 대만 측에 요청했다. 독일 완성차 업체들이 이미 TSMC와 협의 중이며 ‘매우 건설적인 신호’가 있었다고도 적었다.
이와 관련해 대만 당국 관계자는 “미국과 일본, 독일 등 각국에서 외교 루트를 통해 반도체 공급을 늘려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밝혔다. 대만 정부에 ‘SOS’를 친 국가들은 자동차 부문이 국가 핵심 산업이다.
차량용 반도체는 지난해 가을부터 그야말로 ‘귀한 몸’이 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에 반도체 생산이 차질이 빚어졌지만, 수요는 오히려 커졌기 때문이다. 특히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중국이 빠르게 경제 회복에 성공하면서 자동차 수요 역시 회복됐다. 여기에 미국 정부의 대(對) 중국 제재까지 더해지며 전 세계 반도체 품귀현상을 부채질했다는 것이 업계 분석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중국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 SMIC를 거래 제한 기업 명단에 올렸다.
차량용 반도체의 주요 생산 축이던 SMIC에 발주를 넣지 못하게 된 완성차 업체와 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팹리스)들이 세계 최대 파운드리 TSMC와 세계 4위인 UMC 등을 보유한 대만만 바라보는 형국이 된 것이다. TSMC와 UMC는 세계 시장 점유율이 총 60%에 달한다.
이와 관련해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SMIC가 생산하는 반도체 기술 수준은 높지 않지만, 자동차와 가전에 많이 탑재된다”면서 “최첨단 기술을 필요로 하는 반도체는 물론 차량용 반도체까지 전 세계 수요가 한꺼번에 대만으로 몰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TSMC나 UMC가 차량용 반도체 생산을 갑자기 늘리는 것은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차량용 반도체가 스마트폰·컴퓨터·서버 등 IT용 반도체보다 상대적으로 마진이 적어 섣불리 설비 증설에 투자할 경우 손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TSMC는 지난해 상반기부터 수요가 급증한 서버·모바일용 반도체에 생산 여력을 모두 투입하고 있는 상태다.
차량용 반도체 품귀현상은 이미 자동차 생산에 차질로 이어지고 있다. 독일 폭스바겐은 물론 일본의 닛산과 혼다, 도요타, 일본의 포드 등 주요 완성차 업체들이 생산량 조정에 나선 상태다. 미쓰비시UFJ모건스탠리증권은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 현상 여파에 올해 상반기 전 세계 완성차 생산이 150만 대 정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글로벌 차량용 반도체 주요 생산업체들은 최근 제품 가격 10~20% 인상을 요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가격 인상이 현재의 반도체 품귀 해소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업계에서는 반도체 수급 문제가 내년 하반기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