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경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장
재정의 적극적 활용을 옹호하는 측은 한국의 국가부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크게 낮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40% 수준임을 강조한다. 이에 반해 국가부채 증가를 우려하는 측은 국가부채의 증가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점을 내세운다. 논쟁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재정 확대를 주장하는 측의 일각에서는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고 이것을 중앙은행이 매수할 것을 제안하기도 한다. 이 방안은 국가부채의 화폐화로 불린다. 중앙은행이 국채를 매수하면 시중의 자금 압박이 일어나지 않고 국가부채의 부담을 장기간에 분산할 수 있다. 국가부채의 화폐화에 대해서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까지 나서서 국가부채의 급격한 증가를 초래할 수 있다며 강한 반대 입장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견해도 나뉘기 때문에 어떤 주장이 맞는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이런 경우 역사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 역사에서 국가부채 수준이 언제 가장 높았을까? 많은 이들은 지금이 국가부채가 최고 수준에 치닫는 시기라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국제통화기금(IMF)의 2019년 보고서에 따르면, 1900년부터 2015년 사이에 주요국의 국가부채 수준이 가장 높았던 때는 GDP 대비 140%에 달했던 1946년이다.
당시 주요국의 국가부채 수준이 그렇게 높았던 이유는 제2차 세계대전의 여파이다. 그 나라들은 조국 수호를 위해 가능한 한 최대의 국가역량을 동원했고 그 과정에서 부채가 늘어났다. 주요국의 국가부채 추이를 좀 더 상세히 알 필요가 있다. 미국 등 주요국의 국가부채는 1914년에 GDP의 약 23%에 불과했으나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1922년에 약 92%까지 늘었다. 이후 대공황 직전인 1929년까지 약 60%로 줄었다. 그리고 대공황의 시작과 함께 다시 늘어나 1933년엔 80%에 달했다. 1933년 이후 다시 소폭으로 감소하다가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급증해 1946년에 현재까지의 최고 수준인 140%에 달했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국가부채가 공황과 전쟁을 거치면서 극단적으로 늘어났지만 전후에 경제가 파국으로 치닫지 않았다. 오히려 호황이 지속돼 국가부채는 1970년대 중반까지 30% 수준으로 감소했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보면, 국가부채 수준의 증가는 위기의 원인이 아니다. 그리고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극단적으로 높아진 국가부채는 위기 극복 이후에 찾아온 경제성장으로 극복되었다. 따라서 국가부채의 증가는 위기의 징후가 아니라 위기 극복의 후유증일 뿐이다.
전쟁과 같은 위기 시에 국가부채가 증가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위기 시에는 위기 타개라는 정책 목표가 먼저 정해진 후에, 목표 달성에 필요한 재원을 전 사회적으로 동원하기 때문이다. 보통의 시기에는 예산이 먼저 주어지고, 주어진 예산 아래 달성 가능한 목표를 세운다. 그러나 위기 시에는 위기 극복 자체가 최우선 과제가 된다. 어떤 나라도 전쟁을 주어진 예산 범위 내에서 치르지 않는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국채 금리의 상한을 정하고, 국채가 시장에서 특정 가격으로 전부 소화되지 않으면 나머지를 중앙은행이 매수했다. 일본도 유사한 전통을 가지고 있다. 1932년 국채를 일본중앙은행이 화폐 발행을 통해 직접 매수하여 대공황에서 벗어났다. 이 과정에서 국가부채는 크게 늘어났지만 위기 이후의 경제 성장으로 해결했다.
현재 우리는 단순한 경기 순환의 위기가 아닌 경제 외적 보건상의 충격에 의해서 수요와 공급이 동시에 단절되는 전례 없는 위기에 처해 있다. 이 같은 위기에는 주어진 예산 아래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는 일상적 대응이 아니라 전 사회적 역량을 동원하여 국민 생계를 보호하고 경제의 생산기반을 보호해야 한다. 지금은 예산 제약하의 정책 수행이 아니라 위기 극복을 위해 필요한 예산을 동원할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