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프리즘] 이재용의 위기관리

입력 2021-02-1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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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용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전 SK 사장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의 위기를 어떻게 타개해 나갈 것인가? 두 차례의 옥중 메시지에서 이 부회장은 원론적이지만 단호한 입장을 제시했다. 즉 책임의 일단은 자신에게 있으며, 기업 본연의 역할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하자고 했다.

1월 18일 구속된 이 부회장은 25일 이번 판결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그리고 더욱 자숙하면서 스스로를 성찰하겠다고 했다. 삼성은 국민과 약속한 투자와 고용창출 등 본분에 충실해야 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다짐했다. 세계적인 경영학의 구루 짐 콜린스는 ‘위대한 기업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에서 자만은 성공이 선사한 부작용이라며 위대한 기업이 몰락한 첫 번째 이유로 꼽았다. 그런 면에서 이 부회장이 제시한 겸손의 화두는 내용과 타이밍에서 삼성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높이는 역할을 했다. 삼성전자의 주가가 이 부회장의 구속에도 요동치지 않은 것이 그 반증이라고 하겠다.

그럼에도 여전히 덮쳐오는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 세 가지의 관점에서 삼성이 접근해 보기를 제안한다. 첫째는 ‘준법경영’. 사실 삼성이 닥친 위기는 ‘준법’의 개념과 범위에 대한 삼성 내외부의 시각 차이였다. 숱한 쟁점에 대해 삼성의 내부는 법을 지킨다고 했다. 반면 그렇지 않다는 외부의 반론도 많았다. 노동자의 법적 권리인 노동조합 결성을 삼성이 용인하지 않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러한 시각의 차이를 교정시켜 주는 것이 ‘준법감시위원회’의 제대로 된 활동이다. 이 부회장의 실형을 선고한 재판부는 준법감시위원회가 미래의 준법경영을 보장하는 데 미흡하다고 판단했다. 이는 삼성의 내부 시각과 논리가 준법감시위원회를 이미 접수한 것이 아니냐는 경고의 표시라고 보여진다. 그럼에도 삼성 내부에서는 아무도 표현하지 못한 재판부에 대한 불만을 준법감시위원회가 공개적으로 행한 것은 매우 의미가 크다. 이 부회장이 하고 싶은 내부의 준법경영을 준법감시위원회가 객관적이고 공정한 외부의 시각에서 정립시켜 주길 바란다. 여태까지의 삼성은 법의 해석은 지배할 수 있었지만 법의 정신을 구현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큰 기업이라 부담은 크겠지만 위대한 기업으로의 노정은 늘상 이런 과정을 밟았다.

두 번째 제안은 사회공헌활동(CSR)의 진정성과 자발성에 대한 재검토이다. 삼성의 사회공헌 역사는 길고 자원봉사, 어린이집 등 사회를 변화시킬 만한 의미 있는 테마를 발굴해 키워냈다. 그런데 경영권 승계의 고비마다 공익법인이 도마 위에 올랐다. 삼성문화재단이나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이 그랬고 미르·K재단도 삼성이 가장 많이 출연했다. 이 과정에서 사회와의 공감은 엷어지고 사업과의 연관은 두터워졌다. 사회와의 연계인 기부와 봉사가 권력과의 청탁과 거래라는 프레임에 걸려 버렸다. 누구라도 삼성 사회공헌사업의 자발성과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차제에 삼성이 공익법인 플랫폼 구축에 나설 것을 제안한다. 공동체의 발전을 위한 가치와 철학을 정립하고 기부자나 국민들이 어디에 어떻게 기여하고 헌신할 수 있는지 찾아보게 하자는 것이다. 이 플랫폼은 삼성의 힘으로 만들지만 국민들의 참여로 굴러가게 된다. 삼성의 공동체를 위한 자발성과 진정성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단기간에 완성된 모델은 나오지 못하지만 지속적으로 보완되며 나라의 격을 높이는 완전한 형태로 나아가게 된다.

위기 이후 삼성의 정신이 극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정치권과의 관계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 삼성은 권력에는 공손했고 국민에겐 미흡했다. 어느 기업도 예외는 없었다. 기업과 정치권의 관계는 항상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쉽게 말해 돈 뺏기고 뺨 맞는 신세였다. 아킬레스건은 경영권 승계, 거의 모든 대기업이 그랬다. 혈육 간에 싸움이 빚어지고 고소·고발이 난무했고 결국 권력의 개입을 불러들였다. 그런데 이 부회장은 자식에게 경영권의 대물림을 하지 않겠다고 이미 선언했다.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가 그랬고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구글 등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도 모두 그랬다. 모든 창업자가 물러났지만 모두 아들이 후계자는 아니었다. 그들은 강력한 혁신을 유일한 자산으로 자신의 기업에 물려주었다. 그리고 막장 정치에 공개적으로 경고를 하고 미국 경제의 발목을 잡지 말라고 정치권에 당당하게 요구했다. 트위터는 현직 대통령의 계정을 삭제했고 코카콜라, AT&T, 구글 등은 정치자금의 기부를 중단했다. 그리고 미국 국민들에게 올바름(Correctness)이라는 가치를 기업의 정신으로 제시했다. 권력 포비아(Phobia)에서 자유롭게 된 삼성이 이러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

하나 더 붙인다면 기업에 요구만 하고 그 성과를 평가하는 데에는 인색한 한국 사회에 만연한 반기업 풍토를 해소하는 데 삼성을 비롯한 경제계 전체가 힘을 모았으면 한다. 미국의 부호들이 결성한 ‘기부서약(Giving Pledge)’은 미국이라는 공동체를 위해서뿐 아니라 기업을 위해서도 큰일을 해냈다. 3, 4세 오너 경영자가 깔판을 깔고 제2, 제3의 삼성전자, 현대자동차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선배로서 이 부회장 세대가 응당 해야 할 몫이다. 쉽지 않으나 할 수는 있는 이 몇 가지 과정을 거치면서 삼성에 닥친 지금의 위기는 갈채 속에 기회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위기를 극복해 낸 이재용 부회장에게는 가장 큰 박수가 쏟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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