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1999년 집권한 카를로스 메넴 아르헨티나 전 대통령이 14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90세.
CNN에 따르면 메넴 전 대통령은 이날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병원에서 요로 감염으로 입원 치료를 받던 중 숨졌다. 메넴 전 대통령은 최근 몇 주 동안 건강 상태가 악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메넴 전 대통령의 별세 소식을 전하면서 사흘간의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
메넴 전 대통령은 1990년대 고도의 경제 성장을 이룩했다는 평가를 받는 동시에 경제 양극화와 높아진 실업률, 범죄 증가와 부정부패 등 과오가 크다는 평가를 동시에 받는 인물이다. 아르헨티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로 활동하는 호라시오 버비츠스키는 워싱턴포스트(WP)에 “아르헨티나에는 메넴이 국가를 위해 한 일을 결코 잊지 못할 사람도, 그가 한 일을 절대 용서하지 않을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1930년 시리아 이민자 가정 출신 법조인이었던 메넴 전 대통령은 일찍이 페론당에 가입하며 정계에 입문했다. 두 차례 주지사를 지낸 그는 1989년 대선에서 페론당 소속으로 출마해 대통령에 당선됐고, 1999년까지 10년 간 대통령을 지냈다.
후안 페론 전 대통령을 계승한 페론주의는 좌파 포퓰리즘의 동의어로 여겨지지만, 메넴 전 대통령은 취임 후 페론주의와는 거리가 먼 신자유주의 정책을 폈다. 국영 기업 민영화를 비롯해 가격 통제 정책 폐기, 외국 투자 유치에 힘썼다. 특히 달러 대비 페소화 환율을 1대1로 고정하는 페그제를 도입했다.
그 결과 메넴 전 대통령은 연 5000%에 육박하던 인플레이션을 1993년 한 자릿수로 안정시켰다. 빈사 상태였던 경제는 활기를 되찾았고 1991~1997년 아르헨티나는 매년 6%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당시 남미에서 가장 높은 성장률이었다. 외교적으로는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1982년 포클랜드 전쟁 이후 단절됐던 영국과의 국교도 부활시켰다. 경제 안정 등의 성과로 임기 중 중임 개헌을 여야 합의로 이뤄내며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집권 후반에 급격한 신자유주의 정책의 폐단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서민들은 극심한 ‘부익부 빈익빈’에 시달리고 실업률은 치솟았다. 고평가된 페소화로 수출 부진이 초래됐다. 관리들의 부정부패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결국, 메넴 전 대통령 집권 후반부터 심화한 아르헨티나 경제 위기는 그가 대통령직에서 내려온 지 2년 후인 2001년 1550억 달러(약 171조 원) 규모의 채무불이행(디폴트)으로 이어졌다.
한편, 메넴 전 대통령은 2001년 70세의 나이에 당시 36세였던 미스 유니버스 출신 인기 연예인 세실리아 볼로코와 재혼했다가 10년 뒤 이혼했다. 그는 1995년 아르헨티나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 김영삼 전 대통령을 만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