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북미관계 영향 주목
미국 법무부가 17일(현지시간) 북한 해커 3명을 13억 달러(약 1조4000억 원)어치의 암호화폐와 현금을 빼내기 위해 해킹한 혐의로 기소했다고 밝혔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법무부는 이날 이러한 내용이 담긴 지난해 12월 공소장을 공개했다. 기소된 해커는 북한 정보기관인 정찰총국 소속으로 박진혁, 전창혁, 김일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정찰총국은 ‘라자루스 그룹’, ‘APT38’ 등 다양한 명칭으로 알려진 해킹부대를 운용하고 있다. 이중 박진혁은 2018년 9월 기소된 소니픽처스엔터테인먼트 해킹에도 가담한 인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들이 2015년부터 2019년까지 베트남에서부터 방글라데시, 대만, 멕시코, 몰타, 아프리카지역의 은행 컴퓨터 네트워크를 해킹하는 등 광범위하게 활동했다고 밝혔다. 특히 2017년 5월 파괴적인 랜섬웨어 바이러스인 워너크라이(WannaCry)를 만들어 은행과 가상화폐 거래소를 해킹했다. 이를 통해 전 세계 은행에 자금 이체를 유도하기 위해 거짓 메시지를 전송했으며 12억 달러가 넘는 자금의 절도를 시도했다는 설명이다.
또한, 2018년 3월부터 작년 9월까지 피해자 컴퓨터에 침입할 수 있는 수단인 여러 개의 악성 가상화폐 앱을 개발해 해커들에게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암호화폐 거래소를 표적으로 삼아 2017년 슬로베니아 기업에서 7500만 달러, 2018년에는 인도네시아 기업으로부터 2500만 달러, 뉴욕의 한 은행으로부터 1180만 달러를 훔쳤으며 이 과정에서 ‘크립토뉴로 트레이더’라는 앱을 침투경로로 사용했다.
미 국무부와 국방부는 물론 미 방산업체들과 에너지, 항공우주 기업들을 대상으로 악성코드를 심은 이메일을 보내 정보를 훔쳐가는 ‘스피어 피싱’ 행각도 시도했다고 법무부는 밝혔다. 존 데머스 법무부 국가안보담당 차관보는 “총이 아닌 키보드를 사용해 현금다발 대신 가상화폐 지갑을 훔치는 북한 공작원들은 세계의 은행 강도”라고 비난했다.
이와 관련해 로스앤젤레스 검찰과 미 연방수사국(FBI)은 뉴욕의 한 은행에서 해커들이 훔쳐 2곳의 가상화폐 거래소에 보관 중이던 190만 달러의 가상화폐를 압수하기 위해 영장을 발부받았다. 이 화폐는 은행에 반환될 예정이라고 당국은 밝혔다.
법무부가 작년 12월 기소된 사건에 대한 공소장을 이날 공개하면서 북미 관계에 미칠 영향도 주목된다.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 때 기소된 사건이라 해도 그 공개 시점이 조 바이든 행정부가 대북정책을 검토하는 와중에 나왔기 때문이다.
이번 기소는 2014년 발생한 소니픽처스 사이버 공격에 연루된 박진혁을 미 정부가 2018년 기소한 사건을 토대로 이뤄졌다. 당시 북한은 소니픽처스가 북한 지도자 암살을 소재로 한 코미디 영화 ‘인터뷰’를 제작·배급하는 것에 반발했었다. 해킹 사태 발생 이후인 2015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북한 정찰총국을 대상으로 고강도 대북 제재를 담은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이번 사건은 북한이 유엔과 미국의 제재를 받는 그들의 주요 수출국에서의 금융 사이버 절도에 의존하는 정도가 심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기업연구소 분석가인 니콜러스 에버하트는 "13억 달러는 2019년 북한의 민수용 수입상품 총액의 거의 절반"이라면서 “북한 경제에 있어 엄청난 것”이라고 했다.
한편 미국 경제매체 CNBC는 이번 북한 암호화폐 해킹시도는 비트코인 가격이 지난 12개월간 400% 넘게 오르면서 발생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