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소비 최근 10대로도 번져
"내 집 마련 못하는 현실 좌절감, 소비로 극복"
'하울', '언박싱', '플렉스'. 밀레니얼 세대에게 과소비는 하나의 놀이 문화가 된 지 오래다. 유튜브와 블로그에는 관련 콘텐츠가 넘친다. 제품을 구매한 뒤 소개하는 하울 콘텐츠나 상자를 열면서 제품 후기를 전하는 언박싱, 명품·고가 전자제품 등을 자랑하며 부를 과시하는 플렉스 등이다.
이런 풍조에는 과시욕과 함께 또래 집단과 소통하고 싶은 욕구가 담겨 있다. 하울, 언박싱, 플렉스 등의 유희적 소비 문화는 이미 활발한 소통의 매개체로 기능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비대면 소통이 중요해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더 두드러지고 있다.
그 결과, 밀레니얼 세대는 백화점의 큰 손으로 떠올랐다. 롯데멤버스에서는 2017년 2분기 6000건이었던 20대의 명품 구매 건수가 2020년 2분기에는 4만4000건으로 7.3배 늘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20, 30대 구매 비중이 전체의 50%를 넘어섰다.
이러한 명품 소비 경향은 10대로 번지고 있다. 지난해 9월 아르바이트 전문포털 ‘알바천국’이 10대와 20대 총 4265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10대의 33.6%가 추석 이후 새로운 명품을 구매할 계획이 있다고 답했다. 10대들이 명품을 구매하는 가장 큰 이유는 '유행에 뒤처지고 싶지 않아서(18.3%)'였다. 그 뒤를 주위에 나만 없는 것 같아서(17.4%) 등 또래 집단을 의식한 요인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여기에 코로나 팬데믹으로 여행길이 막히면서 '보복 소비' 심리가 반영되며 명품 같은 고가품 소비가 증가했다. 코로나 이후 국내 관광지는 한산했지만, 백화점 명품관은 늘 사람으로 붐볐다. 샤넬, 루이뷔통, 에르메스 등 요즘 국내 주요 백화점의 명품관 매장은 1시간 정도 기다려야 입장이 가능하다.
주말이나 가격 인상 소식이 들리면 대기 줄은 더 길어지고, 종종 오픈런(개점 전부터 매장 앞에서 대기)까지 볼 수 있다. 명품의 가격 인상은 '샤테크(샤넬+재테크)'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인기 한정판이나 단종된 제품을 저렴하게 구매해 가지고 있으면 후에 웃돈을 얹어 팔 수 있다.
가격을 올렸다 내렸다 하는 유통업계도 이런 명품 소비 증가에 한몫하고 있다. 최근 유통 업계는 늘어난 명품 소비에 발맞춰 앞다퉈 명품 할인 행사를 열고 있다. 롯데백화점에서 운영하는 명품 편집숍 롯데 탑스는 19일부터 28일까지 명품을 최대 40%까지 할인하는 '롯데 탑스데이'를 진행한다. 신세계백화점 경기점과 센텀시티점, 21일까지 '해외 유명 브랜드 대전' 열어 최대 80% 할인 행사를 연다.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이은희 교수는 "구매한 명품을 찍어 올리는 행위 자체가 소통을 위한 하나의 매개체"라며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줄 만한 것, 좋아할 만한 걸 공유하는 심리가 반영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은희 교수는 또 소비 환경이 온라인으로 옮겨간 것이 '플렉스, 하울 등 유희적 소비문화에 영향을 줬다고 분석했다. 기업의 마케팅과 가격 인상 등이 일정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요즘 소비자들은 온라인 공간에서 스스로 소비문화를 적극적으로 발전시켜 나간다.
밀레니얼 세대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커진 불안과 좌절감을 명품 과소비로 푼다는 분석도 있다. 코로나 이후 부동산 및 안전자산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지만, 젊은 세대는 이를 보유하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직장인 문은주(31) 씨는 지난해 6월 주식 투자로 얻은 이익을 명품 가방을 사는데 모두 써버렸다. 은주 씨는 "어차피 이 돈을 가지고 있어 봤자 집도 못 사는데 그냥 가방에 썼다"고 말했다.
이은희 교수는 "부동산은 우리에게 '둥지'나 마찬가지인데 젊은 세대는 부동산을 마련하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면서 "둥지를 마련할 수 없다는 게 굉장한 좌절감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고, 그 좌절감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명품 소비가 이뤄지고 있다고 본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