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 이후 은행권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의 원금 상환과 이자 납부를 미뤄준 대출규모가 80조 원을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감염병 확산이 지속하고 이들의 영업 부진 또한 깊어지면서 금융 부실의 시한폭탄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가운데 3월 말로 다가온 대출 만기연장 및 이자 납입 유예시한이 다시 연장될 것으로 보이고 금융 부실화 가능성은 더욱 커지는 양상이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코로나19 관련 여신 지원 실적은 17일 현재 만기연장 잔액이 29만7294건에 73조2131억 원으로 집계됐다. 대출원금을 나눠 갚던 사업장의 분할납부를 미룬 원금상환 유예도 9963건, 6조4534억 원으로, 납기가 연장된 대출 총액은 전체적으로 79조7120억 원이다. 이자 받는 것까지 유예한 대출 1조9635억 원을 합치면 82조 원에 육박한다.
결국 5대 시중은행만 따져 코로나19와 관련해 빚 상환이 불투명한 잠재적 부실 규모가 그 정도라는 얘기다. 이들의 1월 말 신용대출액이 135조2400억 원임을 감안하면 결코 작지 않다. 문제는 이 대출원금과 이자가 제대로 상환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데 있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대출의 만기와 이자 납입은 작년 9월 한 차례 유예돼 오는 3월 말이 시한이다. 금융당국은 다시 재연장을 밀어붙이고 은행들도 따라갈 수밖에 없는 상태다. 하지만 은행권은 아무리 코로나19의 어려움을 고려하고 만기 연장의 불가피성을 인정한다 해도, 이미 잠재부실이 80조 원을 넘는 위험한 상황을 계속 떠안고 가는 것은 무리라는 입장이다.
이들의 상환불능 사태가 빚어질 경우 금융 부실화와 함께 경제 전반의 위기로 전이되는 방아쇠가 될 가능성 때문이다. 은행권은 특히 이자조차 못내는 한계 사업장까지 무조건적으로 상환을 유예하는 데 대해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옥석을 가리지 않은 이자 유예로 ‘연명 치료’에 매달리다가는 구조조정의 기회를 놓치고, 오히려 원금도 회수하지 못한 채 부실 규모만 더 키워 장기적인 악영향을 가져올 것으로 우려한다.
이들 잠재 부실에 대한 연착륙 대책이 시급하다. 은행들은 밀린 이자를 원금과 합쳐 장기간 나눠 갚게 하는 분할납부 방식이라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업들의 구조조정에 적용하는 방식이다. 더 이상 만기연장과 이자유예 조치가 이뤄지면 부실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는 위기감도 크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의 피해를 덜기 위한 구제가 다급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무작정 지원으로 금융 부실로 이어져서는 더 큰 부작용을 가져오게 된다. 금융 안정성을 위협하지 않는 대책이 반드시 보완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