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의료법은 가중처벌·평등원칙 침해”=대한의사협회는 “의료법 개정안이 의결된다면 국난극복의 최전선에서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고 있는 대한의사협회 13만 회원들에게 극심한 반감을 일으켜 코로나19 진단과 치료 지원, 백신접종 협력지원 등 코로나19 대응에 큰 장애를 초래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한의사협회 제41대 회장선거 입후보자들도 공동성명을 통해 “무차별적인 징계는 진료현장에서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할 것이고 결국 그 피해는 국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라며 “국회가 의사들의 자율적 도덕성을 짓밟고 의사들을 예비범죄자 취급만 하는 식의 의료법 개정을 하려 한다면 대한의사협회 회장에 누가 당선되든지 상관없이 즉각 전면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주장했다.
의협은 의료법 개정안 반발 근거로 가중처벌 및 헌법상 평등 원칙을 침해하는 과잉 규제라고 주장한다. 법원 판결에 따른 처벌 외에 직업의 자유를 박탈함으로써 가중처벌이 되고, 특정 직업군을 다른 직종과 불리하게 처벌하는 것은 형평성에 반하는 과잉규제라는 것이다.
또 이번 개정안이 의료인에게 높은 윤리의식을 요구하고, 면허를 엄격히 관리하기 위한 것이라면 의사가 자동차 운전 중 과실로 사망사고를 일으켜 금고형이나 집행유예 처분을 받는 경우 수년간 의료행위를 할 수 없게 된다며 이는 개정안 취지에 부합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의료인의 면허 결격사유를 범죄의 종류나 유형에 따라 한정하지 않고 관리하는 것이 외려 의료인이 자율적으로 윤리의식을 높이고, 면허를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출 기회를 빼앗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정치권, “생명 볼모로한 최악 집단이기주의” 공격=이같은 의사들의 주장에 대해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정치권은 곧바로 반박하면서 의협과 정치권의 설전은 이어졌다.
김남국 의원은 최대집 의사협회장이 “백신 접종 협력 중단을 검토하겠다”고 밝히자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의협이 정말 한심하고 부끄럽다”고 지적하면서 “의사가 백신 접종 가지고 협박하면 그게 깡패지 의사입니까”라고 평했다. 김 의원은 국민의힘을 향해서도 “백신 접종으로 국민을 협박하는 의협은 왜 비판하지 않냐”며 “최 회장이 국민의힘과 한통속이라서 그러냐”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최 회장은 “민주당이 정말 한심하고 역겹다”며 “의원이 입법을 갖고 보복성 면허강탈법을 만들면 그것이 조폭이지 국회의원이냐”고 재반박했다.
같은당 우원식 의원도 SNS를 통해 “강력범죄를 저지른 의사의 면허가 취소되는 법안을 의협이 ‘악법’으로 규정하고 본회의 통과를 저지하려 총파업과 백신 접종 보이콧을 고려한다고 한다”며 “생명을 볼모로 하는 최악의 집단이기주의”라고 공격했다.
국민의힘도 반박에 나섰다. 배준영 대변인은 21일 오후 논평을 내고 “민주당이 의사면허 취소와 관련한 의료법 개정안 통과에 열을 올린다”며 “왜 하필 지금이냐”고 비판했다. 이어 “의료계는 우리의 코로나19와 백병전을 벌이는 전위부대”라며 “의료계와 화풀이 일전을 벌이는 게 과연 코로나19 극복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정부·여당은 신중히 판단하기 바란다”고 요구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이날 페이스북 글에서 대한의사협회 총파업 움직임에 대해 “특정 직역의 이익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며 “만약 이를 빌미로 불법적인 집단행동이 현실화한다면 정부는 단호히 대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시민들 “다른 전문직도 금고 이상이면 자격정지” =그러나 시민단체나 일반 시민들은 의협이 국민 생명을 볼모로 또다시 시위를 한다며 불편한 시선을 드러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의료법 개정안이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연합회 관계자는 “환자의 안전을 위해 의료인 면허관리뿐 아니라 수술실 폐쇄회로(CC)TV, 블랙박스 설치, 행정 처분 의료인 이력도 공개해야 한다”며 “의료법 개정안은 오히려 의료인 면허 권위와 신뢰를 높이는 방법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시민단체 관계자는 “지난해 8월 코로나가 다시 유행하기 시작했을 때 의협은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에 불만을 품고 파업을 벌였다”며 “위기 때마다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집단 이기적인 행동을 보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시민들도 대체로 총파업을 언급하는 의협의 반응이 과하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서울 강서구에 사는 김모(31) 씨는 “강력범죄를 저지른 의사 면허를 취소하는 게 의사 탄압이라는 주장은 억지”라며 “의협은 강력범죄를 저지른 의사에게 자신과 가족의 건강을 맡길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인천에 거주하는 최모(48) 씨는 “범죄자가 의료행위를 한다는 것은 난센스”라며 “변호사나 공인회계사 등 다른 전문직도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자격이 정지되는데 의사라고 다르게 볼 필요가 있는가”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정치권이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앞둔 예민한 시기에 불필요한 마찰을 일으켰다는 비판도 있다. 서울 구로구의 이모(35) 씨는 “의사들의 반발을 예측하지 못한 것인지, 알고도 무시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 시점에 왜 굳이 (상임위에서) 통과시켜 분란을 만드는 것인지 의아하다”고 말했다. 박미선기자 홍인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