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투명성을 높이고자 도입된 사외이사 제도가 여전히 제 구실을 못하고 경영진의 거수기 노릇을 하는 데 그치고 있다. 특히 삼성, LG 등의 주요그룹 계열사들은 지난 한햇동안 이사회에서 사외이사의 반대 목소리가 사실상 들리지 않았다.
4일 이투데이가 8대그룹 계열상장사 38곳이 낸 ‘주주총회소집공고 사외이사 등의 활동내역’(CJ, 한진그룹 제외)을 분석한 결과, 이사회에 올라온 948건의 안건중 반대표는 단 4건이었다. 부결은 2건이었다.
부결된 안건 중 지난해 12월 삼성중공업 9회차 이사회에서 조현욱 사외이사가 계열회사와의 대규모 상품ㆍ용역거래시 거래한도 승인의 건을 반대했지만, 나머지 3인의 찬성으로 가결됐다. 당시 조 이사는 중소기업 중심의 단체급식 사업자 선정 필요에 대한 의견을 밝히며, 반대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1월 SK하이닉스에선 송호근 사외이사가 ‘SEC LNG 공급거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안에 반대했지만, 다수결에 의해 가결됐다.
한화솔루션은 지난해 2월 2회차 이사회 규정 개정의 건에 대해 사외이사 5인의 전원 반대로 부결됐다. 신세계I&C에선 사외이사 3인 전원이 ‘다문화 지원활동 후원’ 기부금 집행 승인의 건을 반대해 사회공헌 프로그램이 무산됐다.
이사회내 위원회에서도 이들은 거수기 역할을 했다. 8개 그룹 모두 ‘부결’된 안건은 단 1건도 없었다.
사외이사는 대주주와 경영진의 경영활동을 감시·견제하는 구실을 한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정부는 ‘견제받지 않는 권력’인 대주주와 경영진의 전횡과 무리한 의사결정이 경제위기의 큰 원인이 됐다고 보고 이들을 견제하고자 사외이사제도를 전격 도입했다. 그러나 시행한 지 23년이 됐지만 사외이사들은 여전히 ‘거수기’ 노릇에 그치고 있다. 이는 사외이사 추천 단계부터 임명까지 철저하게 대주주와 경영진이 주도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사외이사제도가 제구실을 하려면 사외이사 선임 제도를 실효성 있게 전면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기업의 입장은 다르겠지만, ‘거수기’라는 표현이 맞다고 본다”며 “사회 각계 각층을 대변해 기업의 사익과 공익적 역할을 모두 고려할 수 있도록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연금이 대주주인 기업도 많기 때문에 공익대변 사외이사가 더 많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