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각에선 아이에스에스(ISS)나 글래스루이스(Glass Lewis)의 역량에 비해 과도한 권한이 부여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국내 사정에 밝은 편인 토종 자문사들의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기업의 주총 의안을 분석해 기관투자자에게 자문을 제공해 이익을 얻는 기관은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CGCG), 대신지배구조연구소, 서스틴베스트다. 외국계인 ISS, 글래스루이스를 제외하면 자문사 3~4곳이 국내 2000여 개가 넘는 상장사 주총 안건에 영향을 끼친다고 볼 수 있다. 올해 주주총회를 앞두고 대신지배구조연구소는 600여 개 기업의 주총 안건 분석에 들어갔고, 기업지배구조원과 서스틴베스트는 각각 400개, 200개 기업의 안건을 분석 중이다.
올해 주총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곳은 금호석유화학의 경영권 분쟁이다. 경영권을 되찾아오기 위한 박철완 상무, 그리고 기존 경영진을 유지해야 하는 박찬구 회장 모두 양측이 주장하는 제안의 ‘명분’과 ‘실리’를 주주들에게 얼마나 잘 설득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의결권엔 자문사가 어떤 목소리를 내느냐가 적잖은 영향이 예상된다.
형제간에 경영권 분쟁 중인 한국앤컴퍼니도 어떤 결과가 나올지 관심이다. 조양래 한국앤컴퍼니 회장이 차남인 조현범 사장에게 지분을 넘겨준 가운데 장남인 조현식 부회장과 조현범 사장 간 표대결이 예상된다.
올해부터는 감사위원 1명 이상을 무조건 이사와 별도로 분리 선출해야 하는 점도 의결권 자문사들의 목소리를 키우는 요인이다. 이른 바 ‘3%룰’의 적용을 앞두고 감사위원 재선임을 앞둔 기업들은 이사 선임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변수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현대차, LG전자, LG, LG유플러스, SK하이닉스, SK이노베이션, SK가스, 롯데케미칼, 현대중공업 지주 등 주요 기업들이 올해 감사위원 1명 이상을 새로 선임해야 한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중대재해사고가 발생한 포스코와 택배 노동자 과로사 사고가 발생한 CJ대한통운에 대해 서도 자문사들이 어떤 의견을 전할지 관심이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 행사여부가 관심을 끄는 기업들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주총 의결권을 행사하는 자산운용사 입장에서도 의결권 자문기관의 자문에 따라 재선임 찬성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위법이나 과도한 겸임 등의 이유가 있으면 재선임에 반대할 이유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숨은 권력자’로 불리는 기존 의결권 자문기구에 대한 견제장치는 없다. 지난해부터 금융위원회는 의결권 자문사의 전문성과 공정성 확보를 위해 공시제도 등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도입 시기는 올해 연말로 미뤄졌다. 금융위는 “기관투자자들의 의결권자문사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고 있으나, 의결권자문사의 공정성 전문성 확보를 위한 제도는 미비한 상태”라며 의결권자문사의 정보 공개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