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16년 전 '땅 투기 방지책' 정부가 뭉갰다

입력 2021-03-10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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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LH 땅 투기' 닮은꼴 적발

검찰, 편법농지 취득 규제 건의

'1회성 처벌'뿐 제도 마련 '묵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신도시 땅 투기 논란을 두고 '예정된 파국'이란 평가가 나온다. 3기 신도시 개발지로 발표된 경기 시흥시 과림동과 광명시 노온사동 일대 모습. (연합뉴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신도시 땅 투기 논란을 두고 '예정된 파국'이란 평가가 나온다. 정부와 정치권은 이미 16년 전 이번과 같은 투기를 차단할 수 있는 예방책을 받아두고도 서랍 속에서 묵혀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개발 정보를 이용한 공직자들의 부동산 투기를 예방하는 제도적 장치를 하루 빨리 마련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광명·시흥신도시 땅 투기 혐의를 받고 있는 LH 직원들의 투기 수법 핵심은 허위 영농계획서 작성와 지분 쪼개기다. 광명·시흥신도시 예정지 대부분은 직접 농사를 지어야만 취득할 수 있는 농지이지만, 이들은 거짓 영농계획서를 꾸며 지자체에서 농지 취득을 허가받았다. 취득 후엔 LH 보상 기준에 맞춰 토지 지분을 쪼개 가졌다.

이 같은 불법·편법 투기는 새로운 기법이 아니다. 2기 신도시가 조성 중이던 2005년에도 정부는 검찰을 중심으로 부동산 투기사범 합동수사본부를 꾸려 비공개 정보 이용, 편법 농지 취득, 지분 쪼개기 등 투기 행위를 적발했다. 당시 투기 혐의로 구속된 455명 중엔 공직자 42명도 포함됐다.

당시 검찰은 수사를 마무리하면서 투기 근절을 위한 제도 개선안을 내놨다. 검찰은 '농지 취득자격 증명원 심사위원회'를 설치, 일정 규모 이상 농지 취득을 심의하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허위 서류로 투기세력이 농지를 취득하는 걸 막기 위해서다. 토지분할 허가제 등 토지 쪼개기에 대한 규제 강화도 건의했다.

이 같은 제도 개선안 중 하나라도 제대로 시행됐다면 이번과 같은 부동산 투기 논란을 사전에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 많다. 하지만 지분 쪼개기 투기와 편법 농지 취득은 16년이 지난 지금도 성행하고 있다. 검찰이 개선을 제안한 토지 제도 허점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다. 그 결과 지자체 농지 취득 허가 절차는 여전히 요식에 그치고 있고, 토지 쪼개기는 필지 분할만 제한할 뿐 지분 분할은 규제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

이 같은 허점은 개발사업 때마다 노출되고 있지만 정부는 제도적 개선보다는 개별 사례 처벌 등 대증요법에만 주력하고 있다. 지난해만 해도 정부는 택지개발사업에서 허위 농작물 경작사실확인서 등을 통해 영농 보상비 27억 원이 부당하게 집행된 것을 파악했지만 관련자만 처벌했을 뿐 관련 제도를 손보진 않았다.

시민사회에선 토지 투기를 근본적으로 예방하기 위한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는 "지분 거래에도 필지 분할과 같은 사전허가제를 도입해 투기성 거래를 차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엔 토지 지분을 거래할 때 지자체장 허가를 받도록 하는 '부동산 거래신고 등에 관한 법률'가 발의됐지만 아직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도 이날 LH 앞에서 집회를 열고 "농사짓는 농민만 농지를 소유하게끔 농지법을 전면 재개정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김동현 농림축산식품부 농지과장은 "아직 사태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며 "농지 취득 요건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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