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령 위헌이라는 전제 사실 오인일 뿐 법령 위반 아냐"
대법원이 부랑자 수용을 명분으로 감금과 암매장 등을 자행한 고(故) 박인근 전 형제복지원장의 무죄 판결을 취소해달라며 검찰이 제기한 비상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 2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11일 특수감금 등 혐의로 기소된 박 전 원장에 대한 비상상고심에서 "비상상고 사유로 정한 '그 사건의 심판이 법령에 위반한 때'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기각했다.
과거 법원은 박 씨의 부랑자 수용은 내무부 훈령에 따른 것인 만큼 형법 20조를 적용해 특수감금 행위의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판단했다. 형법 20조는 법령에 의한 행위, 업무로 인한 행위 등은 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검찰은 위헌·무효인 내무부 훈령을 근거로 형법 20조를 적용해 무죄 판단한 것은 법령 위반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훈령의 존재는 형법 20조를 적용하기로 하면서 전제로 삼은 여러 사실 중 하나일 뿐”이라며 “그로 인해 피고인의 특수감금 행위에 형법 20조를 적용한 잘못이 있더라도 이는 전제사실을 오인함에 따라 법령 위반의 결과를 초래한 경우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앞서 대법원은 단순히 법령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전제가 되는 사실을 오인해 법령 위반의 결과를 초래한 경우 ‘그 사건의 심판이 법령에 위반한 때’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유지해 왔다.
재판부는 “법령 위반의 의미와 범위에 관해 종래 대법원이 다른 비상상고 사건에서 적용해 온 것과 동일한 기준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며 “만일 원칙에 벗어나 비상상고를 쉽게 허용한다면 확정판결의 확정력과 기판력에 토대를 둔 법적 안정성에 커다란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재판부는 “이 사건의 핵심은 헌법의 최고가치인 ‘인간의 존엄성’이 침해됐다는 점”이라며 “정부의 적절한 조치를 통해 피해자들의 아픔이 치유돼 사회 통합이 실현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박 전 원장의 주간 감금 부분은 이미 1차 상고심의 파기판결에 따라 효력을 상실한 항소심에 대해 제기돼 비상상고 대상이 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1975년부터 1987년까지 12년간 운영된 형제복지원은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장애인, 고아 등 3000여 명을 불법 감금하고 강제노역, 구타, 학대, 성폭행을 자행했다. 복지원 자체 기록만으로도 513명이 사망했다.
박 전 원장은 1987년 업무상횡령, 특수감금 등 혐의로 기소됐으나 업무상횡령만 유죄가 인정돼 1989년 징역 2년 6개월을 확정받았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왔지만 검찰의 부실·축소 수사 의혹이 지속해서 제기돼왔다.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2018년 4월 “무죄 판결의 유일한 근거가 됐던 내무부 훈령 제410호는 위헌·위법성이 명백하다”며 비상상고를 권고했다. 당시 문무일 검찰총장은 이를 받아들여 대법원에 비상상고를 신청했다.
비상상고는 확정판결을 대상으로 심리나 재판에 법 위반이 있을 때 이를 구제하기 위한 제도다. 법령 적용의 오류를 고쳐 법령의 해석과 적용을 통일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유죄판결이 확정된 사람의 개별적인 권리구제를 목적으로 확정된 사실관계를 재심사하는 ‘재심’과는 차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