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글로벌 인플레이션은 불가피해”
경기 과열에 인플레 평가도 엇갈려
비둘기는 날지 않았다. ‘금리 발작’도 없었다. 2023년까지 금리 인상이 없을 것이라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분위기에 시장은 안도했다. 18일 코스피는 전날보다 0.61% 오른 3066.01에 거래를 마치면서 3000선을 회복했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값은 전날보다 6.5원 내린 달러당 1123.70원에 거래를 마쳤다.
하지만 인플레이션 우려는 여전하다. 1조9000억 달러(약 2140조 원) 규모의 ‘매머드 부양책’에 따른 경기 회복세에 힘입어 물가가 오르면 미국 국채 금리도 다시 들썩일 수 있어서다. 지난해 코로나 팬데믹 여파로 잠잠했던 상승 폭도 3월부터 커지는 양상이다.
3월 이후 ‘인플레이션 스파이크’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채권왕’으로 불리는 미국 월가의 전설적인 채권투자자 빌 그로스 핌코 창업자는 “미국의 물가상승이 조만간 3~4% 수준까지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문제는 빚더미에 앉은 한국경제다. 빚이 많은 개인과 기업에 인플레이션 여파는 더 냉혹할 수 있어서다. 금리가 오르면 이자 부담은 더 무거워지기 마련이다. 2월 말 은행권의 가계대출 잔액은 1003조1000억 원에 달한다. 기업이 은행에서 빌린 돈(995조3000억 원)도 1000조 원 돌파를 눈앞에 뒀다.
강봉주 국제금융센터 부전문위원은 “과잉저축,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조기종식에 따른 폭발적 수요, 공급 측면 물가상승 등을 가정하면 CPI 상승률이 일시적으로 4%를 웃도는 인플레이션 스파이크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월가에도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다. CNN에 따르면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포트폴리오 매니저들은 가장 큰 공포를 답하는 항목에서 ‘인플레이션’을 1위로 꼽았다. 향후 12개월간 더 높은 수준의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예상한다는 펀드매니저의 비율은 지난달 85%에서 최근 93%로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공급 측면에서도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질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미국 트럼프 정부 시절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면서 마련한 각종 보호무역 장벽이 여전히 그대로다. 여기에 코로나 팬데믹으로 국경 봉쇄조치가 이어지면서 글로벌 밸류체인(GVC)의 확산에도 제동이 걸렸다. 이는 미국, 일본 등 선진국들이 제조업 리쇼어링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정부도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국민경제자문회의·한국경제학회가 공동으로 개최한 ‘코로나19 방역정책과 백신 보급의 경제적 효과’ 포럼 축사에서 “미국에서 백신 보급과 재정부양책으로 경기 회복이 빨라질 경우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그에 따라 연방준비제도(연준)의 통화정책방향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라며 “이런 대외 여건 변화는 금융·외환시장의 변동성을 확대시킬 수 있으므로 계속 면밀히 점검하면서 시장 안정을 도모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창고에는 재고가 산더미처럼 쌓이면 기업들의 실적도 악화하면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얘기다. 시장에서 흔히 말하는 ‘나쁜 인플레이션’이다. 박근혜 정부 말, 국민 어깨를 짓누른 스태그플레이션이 그 결과다.
2018년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국정감사에서 박근혜 정부 당시 기준금리를 급격히 인하한 이유에 대해 “2015년 금리 인하 당시 상황은 스태그플레이션을 우려할 정도로 경기가 좋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반면, 경기 회복 국면에서 나오는 ‘착한 인플레이션’은 나쁠 게 없다는 게 전문가 진단이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과거 70~80년대 하이퍼 인플레이션으로 촉발된 금리 상승과 경기침체로 대변되는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이 최근에는 발생하지 않고 있다”면서 “이번에도 스태그플레이션이 아니라면 금리 상승에도 불구하고 주가와 경기가 양호한 흐름을 유지할 여지가 높다”고 전망했다.
오히려 장기 국채 금리가 관건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국채금리 상승으로 시장 금리도 전반적으로 오를 수 있다는 우려다. 기업이 회사채를 발행할 때 적용하는 금리가 오르면 기업 대출금리 부담도 커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은행이나 기업이 재무 건전성이 나빠지면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해 민간부채를 인수해야 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잇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