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로] 인플레이션에 대한 오해

입력 2021-03-2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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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경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장

최근 들어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며 정부의 재정 확장 기조를 견제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재정 확장은 통화량을 증가시키고 그로 인해 인플레이션을 불러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인플레이션을 싫어한다. 자신의 소득이 정해진 상태에서 물가가 오르면 그 사람의 실제소득은 줄어든다. 소득이 늘어난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소득이 늘어나더라도 물가가 오르면 그렇지 않았을 때보다 살 수 있는 상품이 줄어든다. 그렇지만 경제 전체적으로 보면 사정이 다르다. 경제 내의 통화량이 늘어나지 않으면, 달리 말해 새로운 화폐가 경제로 투입되지 않으면 시장경제는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경제는 투입 증가나 기술혁신을 통해서 생산량을 늘려가며 성장해야 한다. 그런데, 통화량이 고정되어 있는 조건에서는 생산량이 늘어나면 가격이 반비례해서 떨어진다. 그렇게 되면 생산 증대에도 불구하고 생산자의 화폐이익은 늘어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통화량이 고정되어 디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생산자는 생산 증대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인플레이션은 생산을 촉진하며 디플레이션은 생산을 위축시킨다.

부채를 고려하면 디플레이션은 그 위험이 더해진다. 통화량이 고정되어 있어서 디플레이션이 일어나더라도 생산을 위해서 빌렸던 부채의 액면가치는 줄어들지 않는다. 생산한 상품을 다 팔더라도 부채를 모두 상환하지 못해 경제위기의 원인을 제공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을 부채디플레이션(debt deflation)이라고 한다. 이와 반대의 논리로 인플레이션은 과거의 부채를 경감해 주기 때문에 오히려 생산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경제 전체적으로 인플레이션은 결코 경계하고 피해야 하는 부정적 현상만은 아니다. 실제로 과거 역사를 보면 인플레이션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1960년부터 2020년까지 63배 늘어났다. 생산량이 그만큼 늘어났다고 할 수 있다. 그 기간 동안 본원통화와 통화량(M1)은 각각 약1만3185배, 5만2307배 늘어났다. 화폐의 양이 이 정도로 늘어난 것이 결코 정책의 오류에 의해서 빚어진 결과라고 할 수는 없다. 이 기간 동안 인플레이션은 연평균 8.3%를 기록했고, 한국경제는 혼란을 겪은 것이 아니라 고도성장을 구가했다. 이런 사실에 비춰 보면 인플레이션은 결코 부정적인 현상이 아니다.

현재 지도자급 경제학자들과 정책 입안자들은 1970년대에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원유가격 인상에 의해서 빚어진 스태그플레이션(인플레이션과 실업이 동시에 일어나는 현상)의 영향으로 인플레이션을 경계하는 1980년대의 학문적 풍조 속에서 성장했다. 그런 배경 때문에 인플레이션을 지나치게 우려한다. 그렇지만 앞서 보았듯이 통화량의 증가와 그에 따른 인플레이션은 경제성장의 자연스런 현상이다.

인플레이션을 경계하는 사람들은 종종 독일의 바이마르공화국이 겪었던 하이퍼-인플레이션을 떠올린다. 독일의 물가는 1921년부터 1923년 사이에 약 1조 배나 올랐다. 이러한 상황은 분명 경제파국을 의미한다. 그러나 최근 미국 카토연구소의 연구에 따르면 하이퍼-인플레이션은 전쟁, 정치적 혼란, 경제체제의 전환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에서 일어난다. 따라서 분명한 정책의도에 따라 이뤄지는 재정 확대가 극단적인 인플레이션을 야기할 가능성은 없다.

재정 확대를 우려하는 학자들이 하이퍼-인플레이션만을 염두에 두고 있지는 않다. 일부 학자들은 인플레이션이 현실화되면 미국이 금리를 인상할 수 있고 그로 인해 금융의 안정성이 흔들릴 것을 우려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 또한 그리 걱정할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미국을 비롯한 선진권 경제는 한국경제보다 부채 부담이 훨씬 크기 때문에 금리를 인상하기보다는 부채 부담의 경감을 위해서라도 상당한 정도의 인플레이션을 용인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는 엄중한 상황이기 때문에 정책 선택에 있어서 그 영향을 세심하게 평가해야 한다. 그럴수록 인플레이션은 해악이라는 단순한 통념에 갇혀 있기보다는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 보다 넓은 시야를 갖출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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