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9일 발표한 공직자 투기근절 대책방지책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 사태가 불거진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나왔다.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는데도 성난 민심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자 자칫 이번 선거는 물론 향후 대선도 장악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청와대 반부패정책협의회가 내놓은 투기 방지책은 △부동산거래분석원 출범 및 국가수사본부 부동산투기 전담 수사부서 신설 △정부합동 특별수사본부 1500명으로 확대 개편 △모든 공직자의 재산등록 의무화 및 부동산 관련 업무 공직자 신규 부동산 취득 제한 △부동산 투기로 얻은 부당이득 최대 5배 환수 및 투기목적 농지 강제 처분 △투기비리 공직자 법정 최고형 구형 등을 담고 있다. '투기 원천 봉쇄'라 일컬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예방과 적발, 처벌, 환수책을 모두 망라하고 있다. 공직자 투기의 싹을 아예 뿌리채 뽑겠다는 '강수'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이날 브리핑에서 공직자와 공공기관 직원의 내부 정보를 이용한 사익 추구는 '용납할 수 없는 배신행위'라고 날을 세웠다. 그는 "취득한 범죄수익은 몰수·추징 보전을 통해 전액 환수하겠다"며 "부동산 부패가 더는 공직사회에 발붙이지 못 하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국회는 24일 LH 방지 5법 중 공공주택특별법·한국토지주택공사법·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본회의를 통과시켰다. 남은 2개 법안인 이해충돌방지법과 부동산거래법 처리에도 속도를 낼 방침이다.
정부가 검찰까지 투입하며 강도 높은 투기 봉쇄책을 내놓은 건 사실상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해서다. 부동산가격 폭등으로 촉발된 국민의 분노에 LH 직원들의 땅 투기 사태가 더해지면서 부정 여론이 들끓고 있기 때문이다.
정 총리는 이날 뼈를 깎는 고통으로 부패의 뿌리를 뽑겠다고 약속했지만 벌써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가장 큰 쟁점은 전 공직자의 재산 신고제다. 당정은 현재 4급 이상 공무원이 기준인 '공직자 재산 의무제' 대상을 모든 공직자와 공공기관 직원으로 확대한다. 지난해 행정안전부 '2020 행정안전통계연보'가 집계한 2019년 12월 기준 전국 공무원 수는 110만4000여 명에 달한다. 부동산 투기와는 거리가 먼 하급 공무원까지 잠재적 범죄인으로 취급하는 건 접근법 자체가 잘못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위직 공무원이 금융자산을 포함한 재산을 신고하게 하는 건 과도한 재산권 침해라는 반발도 예상된다.
무엇보다 친인척이나 지인 등 차명계좌를 통한 거래는 사실상 막을 수 없어 구멍 뚫린 대책이 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문재인 대통량이 주문한 투기 발본색원(拔本塞源)은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는 한계론이 힘을 받고 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이날 “법 시행 당시 수사 중이거나 법원에 계속 중인 사건에도 법 개정안을 적용하도록 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범죄수익은닉처벌법 개정안 발의에 나선다고 밝혔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범죄수익은닉규제법 개정안을 여당이 제안했는데 국회에서 최대한 헌법에 배치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부당이득을 환수할 수 있는 조치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며 “정부도 적극적으로 협의에 참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여당은 지난 주말 과거 친일재산귀속법 등을 예로 들며 소급 입법 추진을 예고했다.
전문가들은 헌법에서 규정한 형벌 불소급(형벌 규정을 소급해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헌법적 원칙) 원칙에 배치된다고 보고 있다. 우리 헌법 제13조 1항이 소급 입법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고, 2항 역시 "모든 국민은 소급입법에 의하여 재산권을 박탈당하지 아니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교수는 "사실상 입법 남발"이라며 비난했다. 학계에선 LH 소급 입법 추진보다는 현행법을 엄격히 적용하고, 이해충돌방지를 법제화해야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