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실리콘 밸리 뱅갈루루에서 성공한 벤처 사업가 발람. 인도 북쪽 농촌 지방에서 태어난 그는 출신 카스트 마저 미천하다. 찢어지는 가난에 부양해야 할 가족 마저 주렁주렁있는 상황. 어린 시절 특유의 영특함으로 선생님에게 '화이트 타이거'라 불렸지만, 발람은 집이 가난해 학교도 다 마치지 못했다. 그랬던 그가 어떻게 성공한 사업가가 돼 부를 이뤘을까?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화이트 타이거(White Tiger, 2021)'다.
영화 화이트 타이거는 신나는 음악과 댄스가 넘치는 기존 발리우드 영화와 완전히 결이 다르다. 어둡고 처연하며, 때로는 처절하기까지 하다. 2008년 맨부커상을 수상한 동명 소설이 원작으로, 원작 소설가 아라빈드 아디가(Aravind Adiga)가 날카롭게 그린 인도의 현실을 영화 안에 그대로 담았다. 25일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색상 후보에 오를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이야기 초반, 영화는 인도의 카스트 제도를 '닭장'에 비유한다. 닭은 닭장에 갇혀 곧 죽을 걸 알면서도 도망치지 않고 가만히 있는다. 심지어 닭장 문이 열려있어도 말이다. 발람은 "인도 사람들이 닭처럼 닭장에서 도망치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영원히 카스트 제도에 묶여 그 처참한 끝을 알면서도 누구 하나 도망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 발람은 닭이 아닌 맹수 '화이트 타이거'. 그는 자신의 미천한 신분과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발람은 차(茶)를 파는 가난한 가업과 결혼을 강요하는 집안의 요구를 무시하고, 어렵게 부잣집 운전기사로 일을 시작한다. 그가 모시는 인물은 부잣집 막내아들 도련님 아쇽(라지쿠마르 야다브 분). 아쇽은 어린 시절 미국 유학을 다녀온 엘리트다. 다른 카스트 출신의 핑키(프리앙카 초프라 분)와 뉴욕에서 만나 결혼할 정도로 열린 마인드를 가졌다. 발람은 아쇽과 핑키 부부를 통해 자신이 그동안 뿌리 깊은 카스트 제도에 젖어있었음을 깨닫는다.
이후 발람은 아쇽 곁에서 열심히 일하고 배우며 돈을 모은다. 하지만 그가 가난의 늪을 빠져나가려 몸부림을 칠수록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진다. 결국, 그는 수렁에서 벗어나기 위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다. 닭장에 갇힌 닭이 아니라 운명을 향해 돌진하는 맹수, 화이트 타이거가 되기 위해서.
IMF는 2018년 인도 경제를 '질주하기 시작한 코끼리'라고 불렀다. 과거 인도 경제는 덩치만 크고 더디게 성장한다는 이유로 코끼리라고 불렸다. 하지만 인도는 이미 2017년에 국내총생산(GDP) 규모 2조5900억 달러를 달성하면서 프랑스를 추월했고, 2019년 기준 2조 8751억 달러를 돌파하며 세계 5위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 물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란 변수가 생기며 현재 코끼리의 질주가 다소 주춤하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인도가 조만간 일본을 제치고 G3로 도약할 것으로 분석한다.
이처럼 인도 경제는 갈수록 성장하고 있지만, 문제는 빈부 격차다. 인도의 빈부 격차는 계층·지역별 인프라 차이와 뿌리 깊은 카스트 제도에서 기인한다. 인도의 전체 GDP는 세계 5위이지만 1인당 GDP는 2104달러로 세계 116위에 불과하다. 한국의 경우 전체 GDP가 1조 6463억 달러로 세계 12위, 1인당 GDP는 3만 1838달러로 세계 27위다. 빈부 격차가 큰 만큼 국민 삶의 수준도 천차만별이다. 인도 암바니 가문은 한국 삼성가보다 더 부자지만, 인도 하류층은 여전히 제대로 된 식수나 생활용수 조차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
닭이 되지 않으려는 영화 속 발람의 처절한 노력은 인도의 카스트 굴레와 빈부 격차가 얼마나 벗어나기 어려운 것인지 알려준다. 처절한 노력 끝에 그는 결국 화이트 타이거가 되지만, 영화 속 화이트 타이거도 자유롭게 풀숲을 뛰놀지 못하고 또 다른 우리 안에 갇혀 있다.
하지만 인도의 빈부 격차를 돌아보는 화이트 타이거 같은 영화의 존재만으로도 인도 사회가 달라질 수 있다는 여지를 보여준다. 인도와 경제성장면에서 비견되는 중국에서는 사회와 제도를 진지하게 성찰한 영화를 찾아 보기 어렵다.
요즘 인도에는 자수성가형 부자가 늘고 있다. 지난해 전 세계에서 가장 재산이 많이 불어난 인물은 인도의 자수성가형 재벌 가우탐 아다니였다. 그는 항만과 발전소를 연결하는 사업망으로 부자가 됐다. 지난해 포스브지가 선정한 인도 10대 부자 중 절반이 자수성가형 부자였다.
2010년대 인도 경제 성장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 모디 총리는 카스트 하위 계급인 상인 신분이었다. 그의 집안은 영화 속 발람처럼 차를 팔았다. 언젠가 인도도 성장하다 보면, 닭장이 아니라 호랑이가 뛰노는 푸른 초원이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