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골목상권] ② 황학동 주방 거리, "식당 망하니 우리도 망해"

입력 2021-04-1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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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추억이 담긴 거리가 사라지고 있다. 오랜 기간 한자리에 머물며 골목을 든든히 지킨 '특화 거리'가 코로나 19와 비대면 전환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그리움과 행복이 담긴 장소가 활력을 잃은 지 오래다. 사람들의 외면과 무관심 속에 거리는 적막감이 감돈다. 사라져가는 골목 속 이야기를 조명한다.

▲서울 중구 황학동 주방거리에 중고 용품들이 쌓여있다. (윤기쁨 기자 @modest12)

“거리를 보세요. 사람이 없잖아요. 식당이 망하면 우리도 망합니다. 매출요?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 어쩌다가 온 손님은 깎아달라고만 합니다.”

13일 황학동 주방 거리는 투박한 쇳덩이들로 가득했다. 사람 키만 한 중고 스테인리스 선반과 싱크대들이 골목을 가득 메우고 있다. 한때는 주인의 애정을 받으며 요긴하게 쓰였을 제품들이다. 쌓인 물건 사이에 자리 잡은 상인은 먼 곳을 바라보며 한숨만 쉬었다. 점포를 기웃거리던 젊은 손님은 매대에 진열된 스테인리스 그릇을 집었다 내리기를 반복하다 결국 빈손으로 자리를 떴다.

▲서울 중구 황학동 주방거리가 한산하다. (윤기쁨 기자 @modest12)

황학동 주방 거리는 1980년대 중앙시장 뒤편에 자리 잡은 중고 주방용품·가구 특화 거리로, 400여 개 업소가 모여있다. 폐업한 식당의 중고 물건을 싼값에 구매할 수 있는 국내 최대 도매시장이다. 전국 외식점 주방용기의 80%가 이곳에서 조달될 만큼 창업자들의 필수 방문 코스로도 꼽힌다.

하지만 코로나 19로 음식점이 줄줄이 문을 닫으면서 이곳도 치명타를 입었다. 지난해에만 식당 7만5645개(지자체 인허가받은 전국 190개 업종 기준)가 폐업했다.

17년째 중고 주방 그릇을 팔고 있는 김모 씨(64세)는 “일부 언론에서는 경기가 어려워 중고 시장이 호황이라고 말하는 데 식당이 망하면 우리도 연쇄적으로 망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며 “지금은 (중고 용품) 매입이나 매매 거래도 거의 없어 힘든 상황”이라고 푸념했다.

▲서울 중구 황학동 주방거리에 위치한 한 점포 앞에 주방용품들이 진열돼 있다. (윤기쁨 기자 @modest12)

코로나 19로 인한 비대면 소비 선호와 온라인 중고 플랫폼의 등장은 이들을 더 고립시켰다. 방문 고객들은 인터넷 최저가를 운운하며 가격을 흥정한다. 한 푼이 아쉬운 점포 주인들은 마지못해 최저가에도 못 미치는 가격에 상품을 판매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황학동에서 중고 주방용품점을 운영하는 이모 씨(59세)는 “오는 손님마다 중고라며 계속 깎아달라고 하는 데 정말 힘들다”며 “그마저도 창업하겠다고 (대량 구매를 위해) 오는 게 아니라 낱개 용품을 사러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이런 식으로 생계를 유지하긴 힘들다”고 말했다.

또 “애초에 이곳은 발품 팔러 오는 곳이기 때문에 비대면이나 온라인과는 거리가 먼 시장”이라며 “그런 건 젊은이들이나 하지 우리가 뭘 할 수 있겠냐”며 푸념했다.

정부에 대한 불만도 크다. 외식업과 밀접한 연관이 있지만, 지원 대상에서 밀려나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최근 4차 재난지원금(버팀목 자금 플러스) 관련 형평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중고 가구점 주인 김모 씨(60세)는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물건을 상대하는데 물건 거래에는 건당 부가세가 많이 붙어 세금은 훨씬 많이 낸다”라며 “그런데도 집합금지 업종이 아니라는 이유로 지원금을 별로 받지 못했는데 왜 노래방만 챙겨주는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 와중에 거리에 물건 내놨다고 구청에서 나와 벌금을 물리는데 너무한 거 아니냐”며 “작년 매출이 40% 줄었는데 올해가 더 걱정”이라며 한숨만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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