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냉키 전 연준 의장, 8년 전 글로벌 시장 혼란 촉발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14일(현지시간) 워싱턴경제클럽 연설에서 기준금리 인상에 훨씬 앞서서 자산 매입을 축소할 수 있다고 밝히자 금융 전문매체 마켓워치는 2013년 시나리오를 따르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대응 차원에서 양적완화에 나섰던 연준은 2013년 테이퍼링 카드를 만지작거렸다. 그러나 5월 벤 버냉키 당시 연준 의장이 테이퍼링을 시사하자 전 세계 금융시장은 ‘테이퍼 텐트럼(Taper Tantrum·긴축 발작)’을 일으켰다. 미국 국채 금리가 급등했고 신흥국 주가와 통화가치는 곤두박질쳤다.
시장 상황에 놀란 버냉키 의장은 속도 조절에 들어갔고 2013년 12월에야 자산 매입을 축소하기 시작했다. 그 후 2년간 금리를 동결했다가 2015년이 돼서야 처음으로 금리를 인상했다.
파월 의장의 발언에 8년 전 긴축발작 악몽 재현 가능성이 고개를 든다. 당장 연준의 테이퍼링 시점을 두고 시장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파월 의장이 금리 인상 훨씬 전이라고 언급한 만큼 내년 상반기에 무게가 실린다. 이르면 올해 말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는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통화정책 변화를 논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면서도 “미국의 백신 접종률이 75%에 달하면 테이퍼링 논의가 시작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블룸버그 백신트래커에 따르면 현재 미국인의 약 36%가 1회, 22%는 2회 접종을 마쳤다. 조 바이든 정부는 5월 미국 모든 성인에 백신 접종 자격을 부여, 7~8월 사실상 집단면역 상태를 이룬다는 목표다. 계획대로 진행될 경우 올 하반기 테이퍼링 논의가 시작될 수 있다는 의미다.
신용평가사 피치는 연준이 올해 말 테이퍼링을 발표하고 내년 초 실시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면서 신흥시장이 긴축발작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금리 상승은 신흥국의 외화 표시 및 자국 통화 표시 대출의 차입 비용 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긴축발작 대비에 착수한 곳도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펀드매니저들을 대상으로 이달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들은 테이퍼링을 최대 위험 요인으로 꼽고 현금 배분을 늘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포트폴리오에서 현금 배분은 2월의 3.8%에서 지난주 4.1%로 높아졌다.
설상가상으로 연준의 금리 인상 시기가 더 앞당겨질 가능성도 있다. ING는 “미국 경제가 강한 성장세를 보이고 고용 환경이 빠르게 개선될 경우 연준이 내년 금리 인상에 몰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테이퍼링을 제대로 하기도 전에 금리를 올릴 수 있다는 의미다. 가파른 금리 인상은 경기침체로 이어져 긴축발작보다 더 최악의 상황을 낳는다.
결국 연준은 시장 상황을 고려해 출구전략 타이밍을 재야 하는 어려운 과제 앞에 놓이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