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서울 동작구의 한 주점에서 남녀 일행 간 폭행사건이 발생했다. 일명 '이수역 주점 폭행' 사건으로 불렸던 이 사건은 온라인에서 남혐(남성혐오)과 여혐(여성혐오)의 대결 양상으로 번지며 논란을 일으켰다.
이후 법원에서 "양쪽 모두의 잘못"이라고 판단하며 마무리됐지만 우리 사회의 남·여 갈등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과거 폭행사건으로 표출됐던 갈등이 이번에는 '언어 전쟁'으로 나타났다. 사실 특정 '성'에 대한 혐오 표현은 오랜기간 문제가 돼왔다. 여성들을 가르켜 '김치녀' '된장녀'란 표현을 사용하며 여성을 사회적 편견과 부정적인 이미지로 일반화해 왔던 것.
그런데 이번 전쟁은 남혐 단어들이 문제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전쟁이 촉발된 것은 카카오톡이 남성 혐오 표현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허버허버' 표현을 사용한 이모티콘의 판매를 중단한데서 시작됐다.
최근 카카오톡은 치즈덕 작가의 '망충하지만 적극적인 치즈덕'과 로잉 작가의 '민초가 세상을 지배한다! 민초토끼!' 등 4종의 이모티콘을 판매 중단했다. 문제가 된 것은 해당 이모티콘들에서 '허버허버'란 단어가 사용됐다는 부분이다. '허버허버'는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남성 혐오 단어라는 주장이 나오는 표현이다. 카카오 측은 "언어의 시대상을 반영해 작가 혹은 제작사와의 협의를 통해 해당 상품의 판매 종료를 결정하게 됐다"고 판매 중단 이유를 설명했다.
카카오톡의 빠른 결단에 일부 사용자들은 반발했다. 불분명한 어원의 인터넷 신조어에 남성 혐오라는 딱지가 붙자, 카카오가 이에 동조했다는 것이다. 한 대중문화평론가는 "근거가 명확하지도 않은 남성들의 주장을 국내 굴지의 플랫폼 기업이 소비자의 '민감함' 유모로 설명한다는 건 혐오표현에 대한 자신들의 공적 기준이 없다는 걸 만천하에 알린 셈이다"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어찌됐든 카카오는 '허버허버'라는 단어를 '남혐 단어'라고 규정지었다. 그러면서 공적차원에서 차별 효과를 따지기도 전에 혐오단어로 공식화됐다. 사실 '허버허버'는 2018년께 만화 ‘검정 고무신’의 주인공 기영이가 눈물을 흘리며 바나나를 먹는 모습을 허버허버라고 표현한 게시물이 인기를 얻으면서 본격적으로 유행했다.
그런데 일부 남성들은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논란이 된 “남자친구가 입을 메기같이 벌리고 허버허버 하면서 먹었다. 오만 정이 다 떨어진다”고 올린 글을 남성이 밥을 먹는 모습을 비하하기 위한 의도로 허버허버를 사용했다고 문제를 제기 한 것이다. 온라인 상에서는 특정 성에 관련 없이 '허버허버'란 단어가 사용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카카오의 제재 이후 '힘죠'·'오조오억'·'보이루'·'웅앵웅' 등의 단어도 사회적 논의 없이 남혐 단어로 분류되면서 이들 단어가 '남혐 단어' 범위를 확장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됐다.
물론 특정 '성'에 대한 혐오 표현은 지양해야 할 사회적 문제다. 실제 '젠더 이슈'에 있어 선진적인 유럽국가, 특히 벨기에서는 2014년 세계 최초로 '젠더 폭력'을 범죄로 규정하는 '성차별주의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이 법에 따르면 성적인 경멸 발언, 열등감을 느끼게 하는 발언 등으로 젠더 폭력을 범했을 경우 징역 최대 1년 또는 벌금 1000유로(129만 원)에 처한다고 한다.
문제는 '특정' 성별의 차별에 문제가 사회적 의제로 다뤄지지 않았다면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건전한 젠더 논쟁을 특정 단어로 한정 지으며 갈등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의 차별에 대한 논의는 아직 진행 중이다. 분단 국가라는 점 때문에 '군 복부'가 남성에 의무화 됐다는 '특수성'에 의해서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 과정에서 '군 복무'라는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남성과 여성 중 단 하나의 성만 자유와 힘을 누릴 수 있다는 것으로 의미가 왜곡되는 현상 발생했다. 이는 아직 논란이 많은 '의제'다.
그러나 성차별 문제는 단순히 일부 남성이 말하는 '군 복무'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한 '성(性)'이 '피해자 프레임'에 갇힐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논점을 흐리지 말자. 모든 혐오는 나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여성과 남성, 남성과 여성이 풀어가야 할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