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성을 징병 대상에 포함하거나 기초군사훈련을 받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여성 병역 의무' 관련 논란이 재차 불거지고 있다. 여성도 남성과 같이 징병하라는 내용의 청와대 국민청원은 사흘 만에 동의자 수 5만 명을 넘어섰다.
지난 16일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여성도 징병 대상에 포함시켜 달라"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나날이 줄어드는 출산율과 함께 우리 군은 병력 보충에 큰 차질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남성의 징집률 또한 9할에 육박하고 있다"며 "성평등을 추구하고 여성의 능력이 결코 남성에 떨어지지 않음을 인지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병역의 의무를 남성만 지게 하는 것은 매우 후진적이고 여성 비하적인 발상"이라고 주장했다.
여성 징병제는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가 마련된 2017년부터 꾸준히 등장하는 청원이다. 지난 2020년 한 해만 하더라도 11개의 관련 청원이 등장했다. 하지만 이번 청원은 정치권에서도 '여성 징병제' 관련 움직임에 동참했다는 점에서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특히, 4·7 재보궐선거에서 야당에 많은 표를 준 '이남자'(20대 남성)의 지지도 힘을 보태는 모양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9일 출간하는 저서에서 "지원 자원을 중심으로 군대를 유지하되 온 국민이 남녀불문 40~100일 정도의 기초군사훈련을 의무적으로 받는 혼합 병역제도인 남녀평등복무제를 도입할 것을 제안한다"며 "모병제와 남녀평등복무제를 기반으로 최첨단 무기체계와 전투수행능력 예비군의 양성을 축으로 하는 정예강군 육성을 추진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박 의원은 19일 방송된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도 "이미 대한민국 군대의 전투병과, 전방부대의 여성 군인 간부가 소대장, 중대장, 지휘관을 맡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며 "여성이라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투병은 남성, 비전투병은 여성이라는 성역할 구분도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과연 여성도 징병 대상에 포함될 수 있을까. 일단 국민들의 여론은 여성 징병제에 대체로 찬성하는 비율이 높았다. 지난해 10월 19일 KBS 1TV 시사 프로그램 '시사기획 창'과 KBS 공영미디어 연구소가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 1012명을 대상으로 한 병역제도 관련 설문 조사 결과, 응답자의 52.8%가 여성 징병제 도입에 찬성한다고 응답했다. 이는 반대 의견(35.4%)보다도 17.4%나 높게 나타난 수치다.
특히, 남성이 아닌 여성들도 군대 내 양성평등과 군대 문화 개선 등을 이유로 여성 징병제를 주장해왔다는 점에서 이번 논의가 의미 있다는 평이 존재한다. 실제로 여성운동 학자들도 과거 여성 징병제 도입을 고려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은 지난 2008년 명지대 교수 시절 '징병제의 여성참여 : 이스라엘과 스웨덴의 사례 연구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에서 "이스라엘이나 스웨덴을 보면 징병제를 통해서든 아니든 군에서의 여성 수 증가와 역할의 확대는 당연한 경향성일 뿐만 아니라 올바른 정책의 방향으로 인정받고 있다"며 "이는 한국사회의 징병제 또한 내용적 변화가 가능하고 기존의 남성 중심의 피해의식을 극복하는 다양한 설계도 가능하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현재 여성징병제를 도입한 국가 중에서도 노르웨이·네덜란드 등 '성평등'을 이유로 도입한 국가들이 존재한다.
노르웨이는 과거 남성만이 징병 대상이었지만, 2016년 7월 여성징병제가 도입되면서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1년간 의무복무를 하게 됐다. 당장 전쟁 위협이 크지 않은 노르웨이가 여성징병제를 도입한 것은 양성평등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2014년 당시 사회주의 정당 소속 여성 당원들은 앞장서서 여성징집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네덜란드도 2018년 '성평등'을 이유로 여성징병제가 도입됐다. 당시 제닌 헤니스 플라스하르트 국방부 장관은 "여성을 군 징집 대상에 포함하려는 것은 당장 병력이 부족해서라기보다 남성과 여성을 동등하게 대우하겠다는 상징적 의미가 더 크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그동안 헌법재판소가 남성에게만 병역의무를 부과한 병역법 규정이 합법이라는 결정을 반복해서 내려왔다는 점에서 여성 징병제의 도입에 큰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병역법 3조 1항은 '대한민국 국민인 남성은 헌법과 이 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병역의무를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고 정해 남성의 병역의무를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이미 2010년, 2011년, 2014년 모두 해당 병역법 조항이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헌재는 2014년 당시 "남성이 전투에 더 적합한 신체적 능력을 갖추고 있고 신체적 능력이 뛰어난 여성도 생리적 특성이나 임신과 출산 등으로 훈련과 전투 관련 업무에 장애가 있을 수 있다"며 "최적의 전투력 확보를 위해 남성만을 병역의무자로 정한 것이 자의적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