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최초 美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
이변은 없었다. 영화 데뷔 50년을 맞은 74세의 배우 윤여정이 ‘미나리’로 한국 배우 최초로 오스카를 품에 안았다. 한국 영화 102년 역사상 첫 미국 아카데미 연기상 수상이다. 윤여정은 시상식 후 온라인 기자회견에서 “미나리는 진심으로 만들었고, 진심이 통한 것 같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윤여정은 2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유니언스테이션에서 열린 제93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한국 배우로는 최초이며, 아시아 배우로는 ‘사요나라(1957)’의 우메키 미요시 이후 두 번째다.
이날 단아한 드레스 차림의 윤여정은 ‘미나리’ 제작사인 ‘A24’의 설립자이자 배우인 브래드 피트가 수상자로 호명하자 상기된 모습으로 무대에 올랐다. 그러고는 “드디어 브래드 피트를 만났네요. 우리가 영화를 찍을 때 어디 있었나요?”라며 특유의 위트 있는 말로 소감을 시작했다. 이어 “유럽 분들은 제 이름을 ‘여영’이라고 하거나 그냥 ‘유정’이라고 부르는데, 제 이름은 윤여정이에요. 오늘만은 모두 용서해 드릴게요”라는 등 시종 농담을 섞어가며 좌중의 웃음을 자아냈다.
윤여정은 트레일러에서 숙식을 함께 한 ‘미나리’ 가족에게도 감사 인사를 전했다. 특히 정이삭 감독에 대해선 “정 감독이 없었다면 이 자리에 설 수 없었을 것입니다”라며 “그는 우리의 선장이자 나의 감독이셨습니다”라고 했다.
윤여정은 두 아들에게도 감사를 표했다. “두 아들이 저한테 일하러 나가라고 종용을 합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아이들의 잔소리 덕분에 엄마가 열심히 일했더니 이런 상을 받게 되었네요.”
마지막으로 윤여정은 자신의 영화 데뷔작 ‘화녀’의 고 김기영 감독에게 감사를 돌렸다. 그는 “나의 첫 번째 영화를 연출한 첫 감독님이셨습니다. 여전히 살아계신다면 오늘 저의 수상을 기뻐해 주셨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윤여정의 수상은 예견된 것이었다. ‘미나리’는 지난해 1월 미국 대표 독립영화제인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과 관객상을 받은 이후 꾸준히 호평을 받아왔고, 1년여 동안 크고 작은 영화제와 시상식에서 수상 행진을 이어왔기 때문이다. 윤여정은 ‘미나리’로 30여개의 연기상을 수상했다.
한국계 미국인 리 아이작 정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미나리’는 1980년 미국 남부 아칸소로 이주한 한인 가정의 이야기를 그렸다. 윤여정은 이 작품에서 딸을 돕기 위해 한국에서 건너간 엄마이자 할머니 ‘순자’를 연기했다. 어린 손자를 짓궂게 놀리는, 할머니 같지 않은 할머니로 전형성에서 탈피한 연기라는 호평을 받았다.
영화 관계자들은 이번 수상에 대해 한국 문화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한국인의 예술적 감성이 세계적 보편성을 확보했음을 보여주는 이정표라고 해석했다. 아울러 세계 대중음악계를 평정한 BTS, 예술성과 흥행에서 모두 성공을 거둔 ‘기생충’에 ‘미나리’ 쾌거까지 더해지면서 한류의 지평이 더 넓어질 수 있다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