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스쳐 지나가는 평범한 이들 모두가 시인에겐 저마다의 서사를 품은 등장인물로 다가와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책엔 시인이 시를 쓰기 위해 서울 시내 곳곳을 누볐던 흔적이 드러난다. 책에 담긴 시 68편은 모두 서울의 구체적인 지명과 장소를 소재로 한다. '만리동 책방 만유인력', '대림동 중앙시장 돌아보기', '아현역 나빌레라'이 그렇다. '낙원삘딍', '밖오시', '산수갑산' 등 실제 가보지 않고는 쓸 수 없는 시어들이 책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온종일 쇠망치를 두드리다 금호동의 고깃집 테이블에 둘러앉아 피로를 녹이는 철공소 인부들, 대림동 중앙시장 좌판 뒤에 쪼그리고 앉은 나이 든 상인들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은 따뜻하기만 하다. 시집의 해설을 쓴 장이지 시인은 전 시인에 대해 "그는 서울을 본다. 서울을 읽는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한다"고 했다.
시인은 세상의 이면에 감추어진 '비밀'을 찾아내려고 한다. 그것은 세속적인 사람들이 궁금해할 만한 것은 아닐지 모르는데, 이 시에서 시적 화자는 함경도식 순대의 맛의 비밀을 탐색한다.
서울 곳곳을 발로 뛰어다니며 쓴 시라고 하면, 서울의 랜드마크를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시인의 관심사는 '골목'이다. '신설동 골목', '흑석동 비사' 등 그의 시에는 유난히 '골목'이 많이 등장한다.
시인은 화려한 조명이 밝게 빛나는 그럴듯한 도심에 서울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누추한 골목과 가난한 산동네, 비만 오면 아직도 진창이 되는 샛길에 서울이 있다고 말하려 한다. 그렇게 세속적인 기준에서 성공했다고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서 삶의 위의(威儀)를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