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거주 의무 없어 4616명 매매ㆍ전매 '돈벌이 수단' 전락
일부 고위직 '관사 재테크'… 정부 뒤늦게 제도 손실 나서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 4일 열린 인사청문회 내내 세종시 아파트 문제로 곤욕을 치렀다. 노 후보자는 2011년 2억8000여만 원에 분양받은 이 아파트를 2017년 5억 원에 팔았다. 문제는 노 후보자가 세종 아파트에 하루도 살지 않고 전세만 놓다 매도했다는 점이다. 세종에서 근무할 때조차 사무실에서 가까운 본인 소유 아파트를 두고 관사를 이용했다.
고위 공무원들의 '특공(특별공급) 재테크'가 연일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손쉽게 아파트를 분양받아 실거주 없이 시세 차익만 누린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는 뒤늦게 특공 제도 손질에 나섰다.
국토부 두 차관도 세종서 억대 차익
황석태 환경부 생활환경정책실장은 지난해 2주택자에서 1주택자가 됐다. 그는 서울 송파구 잠실동 우성아파트를 남겨두고 세종시 새롬동에 있는 새뜸마을 10단지 전용면적 98㎡형을 처분했다. 매도가는 13억5000만 원. 입주 3년 만에 분양받았던 가격(약 3억6000만 원)보다 10억 원 가까이 올랐다.
세종에서 '로또 분양'으로 엄청난 시세 차익을 실현한 공직자는 황 실장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다주택자 공직자 19명이 세종에 있던 집을 정리해 1주택자나 무주택자가 됐다. 분양가 대비 매각 차익은 평균 3억9689만 원, 보유 기간은 4.2년이다. 1년에 9449만 원이 분양 차익으로 생겨났다는 뜻이다.
일부 공직자의 경우 아파트 준공 후 보유 기간이 1년도 안 됐다. 손명수 전(前) 국토부 차관은 아파트가 입주를 시작한 그해 바로 아파트를 팔았고 황서종 전 인사혁신처장, 김희겸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 주영준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자원실장도 아파트 입주 후 실질 보유 기간은 1년 남짓에 불과했다. 그 사이 이들 집값은 분양가 대비 2억~6억 원 올랐다.
주택 정책 주무 부처인 국토부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국토부에선 현직 고위공무원 중 윤성원 1차관과 황성규 2차관, 김상도 항공정책실장이 서울 집을 남기고 세종 집을 정리했다. 윤 차관은 분양가 대비 2억 원대, 황 차관과 김 실장은 4억 원대 차익을 남겼다.
세종시 특공은 중앙부처 공직자에게 재산을 증식하는 주요 수단이었다. 정부는 지난해까지 세종시에 공급된 아파트 절반을 이전기관 종사자를 위한 특공 물량으로 배정했다. 2만5000가구 넘는 주택이 공무원 등 이전기관 특공으로 풀린 것이다.
세종시 등에선 공무원 정착을 장려하기 위해 취득세 등도 감면해줬다. 공무원이 아닌 세종시민 사이에선 청약시장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볼멘소리를 했다. 이전기관 특공 물량을 배정하느라 일반분양 물량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아파트만 받고 실거주는 하지 않는 '얌체' 공무원들이 적지 않았다는 점이다. 윤주경 국민의힘 국회의원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이전기관 특공을 받은 공무원 중 4616명이 그 아파트를 처분했다. 실거주 의무가 없었기 때문이다.
2019년까진 2주택자도 이전기관 특공을 받을 수 있어서 차익 챙기기가 용이했다. 차관급 이상 고위공무원은 관사가 제공되기 때문에 세종에 실거주할 유인이 더욱 적었다. 관사 재테크·특공 재테크 논란이 이어지는 건 이런 제도적 취약점 탓이다. 여기에 지난해 여당이 청와대·국회 세종 이전을 추진하면서 분양 차익을 실현할 적기(適期)가 조성됐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실거주 목적이 없으면서 공무원 특혜 분양을 받을 수 있도록 한 정부의 잘못도 크지만, 이를 악용해 막대한 이익을 얻은 공무원들도 문제"라고 말했다.
정부는 뒤늦게 특공 제도 손질에 나섰다. 지난해 2주택자 특공을 제한한 데 이어 전체 물량 대비 비중도 내년 30%, 내후년 20%로 줄여나가기로 했다. 올 7월부터는 최장 5년간 실거주 의무도 부과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특별공급 물량은 애초 목적대로 사용되는 것이 맞는다. 부득이한 사유가 없다면 실거주하는 게 원칙"이라며 "노 후보자 건은 공직자로서 조금 더 주의 깊게 처신했으면 좋았을 사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