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호프집에서 맥주를 마시는 평범한 저녁. 어느 지역에서 규모 5.5의 지진이 발생했다는 긴급 재난 문자가 날라온다. 용남(조정석 분)은 우리 동네가 아니라며 안심하고 맥주를 들이켠다. 그때 피차일반 같은 백수 처지인 학교 선배 기백(김강현 분)이 조소를 날리며 말한다.
"야, 네가 지금 안전하다고 생각하냐? 지진, 쓰나미 이런 것만 재난이 아니라 지금 우리 상황이 재난 그 자체야" 연거푸 면접에 떨어지며 앞이 하나도 안 보이는 깜깜한 재난 같은 일상. 하루하루가 고단한 가운데, 의문의 유독가스 테러가 일어나며 진짜 재난이 발생한다. 영화 '엑시트'(Exit, 2019)다.
영화 엑시트는 의문의 유독 가스 테러가 일어난 도시 한복판, 용남과 의주(임윤아 분)의 생존기를 그린 영화다. 기존 재난 영화의 공식을 깬 박진감 넘치는 탈출기 속에 현 청년 세대의 고단한 삶을 담아냈다.
의문의 가스를 피해 끝없이 고층으로 올라가야 하는 극한의 재난 상황은 살기 위해 끊임없이 발버둥 쳐야 하는 현 청년 세대의 고달픈 삶을 은유한다. 졸업한 지 5년이 지나도록 취업을 못 한 주인공 용남과 직장 상사의 갑질을 온몸으로 견디는 의주는 모두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고달픈 청춘이다.
2019년 개봉작이지만, 영화 속 청년의 문제는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오히려 더 심각해졌다. 전대미문의 재난, 코로나19는 위기의 일상에 기름을 부었다. 취업 문은 더 작아졌고, 부동산 가격이 치솟으며 자산 격차는 더 커졌다.
전문가들은 이제 막 졸업 후 사회에 뛰어든 세대를 '코로나 세대'라고 명명했다. 20년 전 IMF 세대만큼, 혹은 IMF 세대보다 큰 위기를 맞고 있다고 분석한다. 또 코로나 세대가 지금 제대로 된 직업군에 진입하지 못했다면, 향후 10년간 사회·경제적으로 큰 격차를 겪을 거란 전망도 내놓았다.
청년층의 고용 위기가 단순히 코로나 때문은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한국은행은 2일 ‘고용상태 간 노동이동 분석을 통한 실업률 분해’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실업률 4.0% 중 코로나19 등 일시적인 경기 요인이 미친 영향은 0.1%포인트에 불과하며, 나머지 3.9%포인트는 노동시장의 구조 변화에 따른 영향이었다. 팬데믹 이전에 이미 한국 산업 전반의 고용 창출 능력이 떨어졌다는 이야기다.
일각에서는 청년 문제를 세대론적 관점에서 바라본다. 586세대가 정치·경제 등 각종 사회 분야에서 권력과 일자리를 독점해 청년층과 여성이 노동 시장에서 탈락했고, 이것이 각종 불평등으로 이어진다는 분석이다. 이철승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최근 출간한 '불평등의 세대'를 통해 이러한 사실을 통계를 통해 증명하며, 과대 대표하는 기업일수록 자본수익률이 실적이 좋지 않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지금의 청년 문제가 세대의 문제가 아닌 계급적 문제란 분석도 있다. 특정 세대 집단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을 부추기는 시대적 상황 때문이라는 목소리다. 실제로 계층 간 사다리는 무너졌고, IMF 이후 고착화된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세습되고 있다. 여기에 기득권은 각종 불공정을 저지르며 계층을 세습하려 하니 든든한 배경을 타고나지 못한 청년층의 어려움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작품 속에서 구조 헬기에 타지 못해 덩그러니 남은 용남과 의주는 각종 사회 복지제도에서 소외된 청년을 암시한다. 우리 사회는 이제 막 청년 세대가 맞닥뜨린 현실을 인지하기 시작했고, 당연히 청년 문제에 대한 뾰족한 해답을 내놓지 못했다.
이제 막 청년층의 분노가 들불처럼 번지며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이중 제대로 된 대책은 손에 꼽고 대부분 남·녀를 가르며 정치적 계산에 매몰된 형국이다.
갖은 고생 끝에 타워 크레인에 매달린 용주와 의남은 떠나려는 헬기를 향해 "이제 제발 우리 좀 봐달라"며 외친다. 힘겹게 크레인에 오른 두 청춘의 눈물겨운 사투는 영화 밖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편 가르기로 매몰된 정치적 계산은 거두고 진짜 청년층의 현실을 바라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