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환자실 7년 차 간호사 B 씨
코로나19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의료계가 요즘 다른 문제로 시끄럽다. 수면 아래에 있던 PA 간호사(진료보조인력·Physician Assistant) 이슈가 떠오르면서다. 시작은 지난 12일 간호사의 날을 맞아 터져 나온 PA 간호사들의 목소리였다.
이날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마련한 현장 좌담회에 인형 탈을 쓴 채 나타난 PA 간호사들은 "불법·무면허 의료 행위를 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PA(진료보조인력·Physician Assistant) 간호사
수술·시술·처치·처방·진료 기록지 작성 등 의사 업무를 수행하는 간호사를 말한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오가지만, 의사 인력이 부족한 흉부외과·외과 등에서는 필수 인력으로 자리 잡았다. 보건의료노조는 PA 간호사가 약 1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한다.
이날 좌담회에 나선 간호사들은 부족한 의사 인력을 대신해 각종 업무를 떠맡았다. 의료 기록 작성부터 동맥혈 채취 같은 침습적 의료 행위는 물론, 각종 시술을 했다. 심지어 개복 수술까지 한 간호사도 있었다.
간호사 A 씨는 불법 의료 행위를 못하겠다며 병원에 의사·간호사 업무를 정확히 분담해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너 말고 네 자리를 대체할 사람은 많다"였다. "간호사는 매년 몇백 명씩 들어온다 일하기 싫으면 나가라"는 말에 그는 더 이상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PA 간호사 논의에 불을 붙인 건 서울대학교 병원이다. 서울대병원은 최근 PA 간호사의 업무 절차와 범위 규정에 대한 논의를 본격 시작했다.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대병원은 PA 간호사 소속을 간호본부에서 의사, 교수들이 포함된 진료과로 바꾸고, 이들의 명칭을 '임상전담간호사'(CPN·Clinical Practice Nurse)로 변경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서울대병원은 이달 말까지 논의를 마무리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서울대병원이 PA 간호사 양성화 추진에 나서자 의사 단체는 반발했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병의협)를 시작으로, 경상남도의사회, 전라남도의사회 등이 반대 입창을 냈다. 이들 단체는 △의료 면허체계의 붕괴 △의료의 질 저하 △의료분쟁 발생 시 법적 책임의 문제 등을 근거로 들었다.
병의협은 “공공기관인 국립대병원이 불법 행위를 하겠다고 선언했다”며 법정 대응까지 예고했다.
사실 PA 간호사 문제는 어제오늘의 이슈가 아니다. 한국 의료계의 만성적인 의료 인력 부족으로 인한 해묵은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전공의들이 파업할 당시 PA 간호사가 의료 공백을 메우며 처우 개선 문제가 떠오르기도 했지만, 논의는 그때뿐이었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PA 문제를 해결을 위한 TF팀을 구성하고 12월 1차 회의를 열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재확산으로 논의가 흐지부지됐다. 그 사이 PA 간호사는 더 늘었다. 보건의료노조에 따르면 올해 4월 전국 대학병원 3곳의 PA 간호사 수는 지난해 7월 대비 68명이 늘었다.
해결 방안으로는 △미국, 영국 등처럼 PA 간호사 합법화 △의료법 개정으로 의사·간호사 업무 명확히 규정 △전문간호사 제도 확대 등이 거론된다.
'전문 간호사'는 가정, 노인, 보건, 종양, 중환자 등 13개 전문 분야에서 석사학위 이상의 학력과 실무 경력을 갖춘 간호사를 말한다. 전문간호사 제도는 2018년 국회를 통과했으나 정해진 시행 규칙이 없어 사실상 유명무실한 제도가 돼가고 있다.
보건의료노조 나순자 위원장은 "저희는 어느 한 가지를 해결 방안으로 주장하지 않는다"면서 "복지부가 해당 당사자들과의 협의체를 구성해서 해결 방안을 찾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보건복지부는 5~6월 협의체를 마련해 PA 제도 해결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