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투자 따라 협력사도 투자 러시 전망
삼성, LG, SK, 현대차 등 국내 4대 그룹이 한미정상회담에서 44조 원(394억 달러) 규모의 투자 보따리를 풀었다. 반도체와 배터리 분야 투자가 주요 내용으로, 국내 협력사의 미국 투자와 동반진출도 이어질 전망이다.
특히 양국은 반도체 및 전기차 배터리 공급망 협력을 강화하면서, 차세대 사업분야의 중요 파트너로서 굳건한 관계를 이어가게 됐다.
삼성전자는 21일(현지시간) 미국 상무부에서 열린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서 신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 구축에 총 170억 달러(약 20조 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공장 설립 지역으로는 기존 파운드리 공장이 위치한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이 유력하게 떠오르고 있다. 아직 공장 건설을 위한 세부 인센티브 협상이 끝나지 않아 투자계획이 공식화되진 않았지만,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인센티브 협상에 속도가 날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해당 파운드리 공장엔 5나노미터(nm, 1nm는 10억 분의 1m) 첨단 공정이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반도체 첨단 공정의 핵심 기술로 불리는 극자외선(EUV) 설비도 이용된다. 이르면 3분기 착공에 들어가 2024년 가동을 시작할 전망이다.
오스틴의 경우 2018년부터 증설을 대비해 100만 평이 넘는 신축 시설용 용지를 확보한 데다, 기존 공장이 가진 원자재와 부품 수급 체계를 활용하기도 유리한 곳이다. 삼성전자는 현재 오스틴 공장에 14nm급 시스템 반도체 생산 설비를 운영하고 있다.
20조 원 증설 투자가 확정된다면, 삼성전자가 해외 반도체 공장에 투자한 단일 규모로는 최대다. 삼성전자는 2012년 중국 시안 1공장에 12조 원, 2017년 시안 2공장에 8조 원가량을 투자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조 바이든 대통령이 참석한 백악관 주최의 반도체 공급망 회의에 이어 지난 20일 미국 상무부가 주최하는 반도체 화상 회의에도 초청되는 등 미국 측의 계속된 구애를 받아왔다.
SK하이닉스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인공지능(AI)과 낸드솔루션 등 신성장 분야 혁신을 위한 10억 달러(약 1조1300억 원) 규모의 연구개발(R&D) 센터를 설립하기로 했다. 이석희 SK하이닉스 사장이 지난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밝힌 신규 R&D 센터 건립 계획이 구체화돼 발표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 인사말을 통해 “한미 양국은 70여 년간 이어온 굳건한 동맹을 바탕으로 경제와 산업 분야에서도 긴밀히 협력해 왔다”며 “특히 양국은 코로나 위기를 계기로 중요해진 안정적 공급망 구축을 위해 상호 보완 가능한 최적의 파트너”라고 강조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이번 투자 발표로 반도체 협력사들의 미국 동반 진출도 가시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미국 인텔도 파운드리 진입을 발표함에 따라 글로벌 반도체 서플라이 체인 시장이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대형 장비사의 수혜가 예상되고, 글로벌 장비 시장 확대에 따른 낙수효과가 국내 기업에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소재 기업의 경우 삼성과 인텔 공급 이력이 있는 회사가 물량 확대를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는 여전히 지속하고 있는 파운드리 공급 부족과 미국에 진행될 TSMC, 인텔,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투자를 고려할 경우 비메모리 후공정 투자의 빅 사이클도 올해부터 시작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미국 내 배터리와 전기차 투자도 가속한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은 약 140억 달러(약 15조8000억 원)를 신규 투자하기로 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의 GM(제너럴모터스)과 오하이오주에 총 2조7000억 원 규모의 전기차 배터리 제2 합작공장을 설립기로 했다. 또 2025년까지 미국에 5조 원 이상을 투자해 2곳의 독자 배터리 공장 건설을 추진한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20일 미국 포드와 총 6조 원 규모의 합작사 설립 계획을 밝혔다. SK이노베이션의 투자금액은 3조 원으로, 미국 조지아주 배터리 1, 2공장에 투자한 3조 원을 합해 총 6조 원을 미국 공장 건설에 투자한다.
현대자동차도 2025년까지 미국에 전기차 생산설비와 수소, 도심항공교통(UAM), 로보틱스, 자율주행 등에 총 74억 달러(약 8조3000억 원)를 투입해 성장하는 미국 전기차 시장 확보와 신기술 전쟁 적극 대응하기로 했다.
국내 기업들이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 투자를 늘리면서 양극재, 분리막, 동박 등 배터리 핵심 소재 기업들의 증설·신설 등의 투자도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LG화학은 양극재 생산 능력을 2026년까지 현재의 7배 규모로 확대할 계획이고, 소재 사업에도 합작법인이나 인수·합병 등을 통해 뛰어들겠다고 예고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도 소재 사업 자회사 SK아이이테크놀로지는 분리막 생산 능력을 올해 말 13억6000㎡, 2024년까지 27억3000㎡까지 확대한다는 목표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4대 그룹의 투자로 국내 협력사들의 미국 동반 진출도 예상된다”라며 “한미 반도체·배터리·전기차 생태계 강화를 발판삼아 북미 등 글로벌 시장 확대 등 매출처 다변화에도 힘이 실릴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