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직 50%ㆍ사무직 30% 최대 2년간 무급휴직…"2009년 아픔 반복 않기 위해 고심한 안"
쌍용자동차 노동조합이 최대 2년간의 무급휴직을 골자로 하는 자구안을 가결했다. 고정비용 절감 효과가 있고 생존 의지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회생 절차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8일 이투데이 취재를 종합하면 쌍용차 노조는 조합원을 대상으로 전날부터 이날 오전 9시까지 자구안을 놓고 찬반 투표를 벌였다. 투표 참여 조합원(3224명)의 52.1%(1681명)가 찬성표를 던지며 자구안은 최종 가결됐다.
쌍용차 사 측이 마련한 자구안은 1년간 기술직 50%, 사무직 30% 인원에 대해 무급휴직을 시행하고, 1년 후 경영 상황을 고려해 무급휴직 유지 여부를 재협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최대 2년간 무급휴직을 진행하는 셈이다.
2019년 합의한 임금 삭감과 복리 후생 중단 기간도 2023년 6월까지 2년 더 연장한다. 임원 임금도 이달부터 20% 더 삭감해 40%를 줄인다.
미지급 급여와 연차수당, 임금 삭감분 등은 회생절차가 끝난 뒤 차례로 지급하고, 부품센터 등 부동산 4곳을 한국자산관리공사를 통해 매각한 후 빌려 쓰는 방안도 자구안에 포함했다.
또한, 임금협상을 제외한 단체협상 변경 주기를 기존 2년에서 3년으로 바꾸고, 경영정상화 때까지 임금 인상을 자제하며 파업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까지 자구안에 담겼다. 단체행동권을 스스로 내려놨단 점에서 전향적인 선택이다.
이날 정용원 쌍용차 관리인은 “이번 자구안은 회사가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생존 의지를 대내외에 천명하는 것”이라며 “자구안이 포함된 회생 계획안을 토대로 M&A를 조기에 성사시켜 쌍용차의 장기적인 생존 토대를 구축할 것”이라 강조했다.
노조 내부에서는 사 측의 자구안에 강도 높은 비판이 제기된 것으로 전해졌다. 2009년 쌍용차 사태 당시 해고된 노동자의 복직이 지난해 5월에야 마무리됐고, 경영난으로 임금의 50%만 받는 상황에서 장기간의 무급휴직까지 감당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회생 계획의 청사진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노동자에게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한다는 불만도 터져 나왔다. 과반을 가까스로 넘긴 투표 결과도 내부 분위기를 반영한다.
하지만 인력 구조조정 없이 회사를 살리려면 이 정도의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데에 공감대가 형성되며 자구안 가결로 이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노조는 “일방적인 인력 구조조정은 받아들일 수 없다”라며 인력 감축을 적극적으로 반대했고, 이에 따라 자구안도 구조조정보다 수위가 낮은 무급휴직으로 결정됐다.
정일권 쌍용차 노조 위원장은 투표 결과 발표 후 “자구안은 2009년 당사의 아픔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고심해 마련한 안”이라며 “노동조합은 고용을 안정시키고 회사가 미래로 나아가는 발판을 마련하는 데에 있어 최선을 다할 것”이라 말했다.
자구안은 쌍용차의 회생 절차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조사위원을 맡은 한영회계법인이 법원에 제출할 조사보고서에 자구안이 담기면 청산가치보다 존속가치가 높게 평가받을 수 있다. 무급휴직과 임금 삭감으로 고정비용 절감 효과를 낼 수 있어서다.
고정비 절감으로 연구개발에 더 많은 투자를 단행할 여력도 생겼다. 쌍용차는 올해 하반기 첫 전기차인 E-100을, 내년에는 중형 SUV J100과 소형 SUV 티볼리의 완전 변경 모델 X200 등을 출시할 예정이다.
조사위원의 보고서는 이달 30일 제출될 예정이다. 법원은 이 보고서를 포함한 여러 자료를 검토해 쌍용차의 회생(매각) 또는 청산을 결정한다.
법원이 회생을 결정해야 매각 작업도 추진된다. 법원은 한영회계법인과 법무법인 세종의 컨소시엄으로 구성된 매각 주관사 선정을 전날 허가했다. 매각 주관사는 9일 첫 회의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매각절차를 개시할 예정이다. 이달 말께 입찰 공고가 나가고, 매각 주관사를 통해 인수 의향을 밝힌 업체 4∼5곳을 추려 실사를 진행한 뒤 인수의향서를 토대로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하게 된다.
인수전에는 쌍용차의 우선 협상 대상자였던 미국 자동차 유통업체 HAAH오토모티브가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기업회생 이전부터 인수에 관심을 보인 HAAH오토모티브는 아직 투자 의향을 철회하지 않았다. 이 밖에도 국내 전기버스 제조업체인 에디슨모터스 등 중소기업 3곳이 쌍용차 인수 의향을 밝힌 상태다. 중국과 미국 업체도 공개 입찰시 참여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