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천대 교수, 전 경기과학기술진흥원장
최근 들어 양자기술을 놓고 미국과 일본이 빠른 속도로 접근하고 있는 모습이 주목된다. 차세대 고속 컴퓨팅, 양자컴퓨터 등을 필두로 한 양자기술의 개발과 도입을 위해 중국에 대한 ‘공투(共鬪) 태세’를 구축하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4월 미일 정상회담에서의 공동연구와 인재교류 등 합의 사항을 서둘러 실행에 옮기고 있다. 동맹 관계를 중시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을 계기로 미국과 일본이 손잡고 중국의 양자기술을 앞지르기 위한 ‘미일 양자 동맹’이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양자기술은 양자역학이라고 부르는 물리학의 이론을 응용한 새로운 기술을 가리킨다. 장래의 산업경쟁력과 국가안보를 좌우하는 기술로 주목받으면서 주요국들은 수년 전부터 민관 협력 아래 기술 개발과 응용에 나서고 있다.
미일 정상회담 이후 일본의 내각부, 문부과학성, 경제산업성, 총무성 등과 미국의 백악관 과학기술정책국(OSTP), 에너지부, 국립과학재단(NSF) 등은 온라인를 통해 회의를 계속해왔다. 양국의 협력 발판이 된 것은 두 나라의 핵심 연구거점이다. 일본 정부는 2020년에 마련한 ‘양자기술 이노베이션 전략’에 근거해 통신·암호, 센서 등 8개의 테마로 거점을 구축해 왔다. 특히 지난 4월 이화학연구소에 산학 전문가들이 모여 연구하는 ‘양자컴퓨터 연구센터’가 출범했다. 미국 정부도 2020년에 약 6억 달러(약 7000억 원)를 들여 아르곤, 오크리지, 로렌스 버클리 등 5개 국립연구소에 ‘양자정보 과학연구센터’를 설치한다고 발표했다. IBM과 마이크로소프트(MS) 등 정보기술(IT) 기업들도 참여한다. 미국과 일본은 이러한 거점을 축으로 내년에 공동연구와 인재교류를 구체화한다. 실무자 협의에서 테마 등을 조정해 올 연말에는 유럽도 함께 거점 간의 제휴 등을 논의한다고 한다.
일본 정보해석 전문기업인 밸류넥스에 따르면 1990~2020년 30년간 양자기술의 국가별 특허 건수는 모두 6176건으로 이 중 중국이 3074건으로 1위를 차지하면서 1557건의 미국(2위), 750건의 일본(3위)을 압도했다. 그 뒤를 이어 한국 243건, 영국 162건, 독일 73건으로 집계됐다.
중국은 양자 암호통신의 이용에서 미국과 일본을 훨씬 앞지르고 있는 양상이다. 반면 미국은 인공지능(AI) 등 소프트웨어 기술에서 강하고, 일본은 제조기술에서 경쟁력이 있다. 예컨대 양자 암호통신의 장치에서 도시바와 NEC가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다. 양자컴퓨터의 경우도 필요한 재료와 부품, 주변기기 등에서 일본의 강점이 있다. 미국과 일본이 서로의 강점을 합해 중국에 대항하는 ‘양자 동맹’ 전략은 중국을 넘어서 다른 주요국들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 3월 국가안보 가이드라인에서 “미국은 과학기술 우위를 유지하는 데 재투자함으로써 다시 세계를 주도해 새로운 규칙과 관행을 수립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가이드라인은 양자컴퓨팅과 AI가 경제, 군사, 고용은 물론 평등 개선 노력에도 폭넓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 정부도 3월 초 올해부터 시작하는 제14차 5개년 계획에서 양자기술을 중심으로 AI와 반도체를 중요 분야로 꼽으며, 연평균 7% 이상의 연구개발 투자를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이런 미중 양자기술 개발 경쟁에 일본이 가세함으로써 이제 새로운 국면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은 지난 10일부터 양자 정보통신 기술 개발과 표준화, 산업 활성화 등 정부 지원 근거를 명시한 정보통신융합법 개정안의 시행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한미정상회담에서 나온 양자기술 협력 후속조치에도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한국은 산학연 네트워크를 국가혁신시스템(NIS)의 중추로 삼아 양자기술을 포함한 글로벌 기술 경쟁에 ‘올 코리아(All Korea)’의 자세로 대처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