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뇌사 판정 19세 청년의 하루, 16명 인물 1인극 표현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는 불의의 사고로 뇌사 판정을 받게 된 19세 청년 시몽 랭브르의 심장이식 과정을 둘러싼 24시간의 기록을 담는다. 작품은 시몽의 심장이 이식되는 그 시점만을 묘사하는데 집중하지 않는다. 시몽 삶의 마지막이 결정되고, 그 심장이 새로운 누군가의 심장이 되기까지의 24시간 안엔 16명의 인물이 살아있다. 그 모든 순간이 윤나무의 입을 통해 서술된다.
윤나무는 2019년 우란문화재단에 올려졌던 초연에 이어 국립정동극장으로 이어진 재연까지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에 참여하게 됐다. 윤나무는 120분 동안 해설자, 병원 의사, 청년의 부모, 심장을 이식받는 환자 그리고 시몽과 그의 여자친구가 된다. 윤나무는 "해설자는 윤나무 자체로 보시면 된다"고 했다. 그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을 한 명씩 만나면서 직접 인터뷰를 하거나 그 사람이 되면서 극의 중심점을 이룬다.
"한 사람의 인생이 24시간 동안 어떻게 채워졌는지, 그리고 인생이 어떻게 펼쳐졌는지 생각을 많이 했어요. 16명의 인물을 혼자 채워나가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었죠. 그 인물들의 살아있는 모습을 얼마만큼 보여줄 수 있을지, 단면이지만 그 안의 깊이를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지 가장 고민했습니다."
윤나무는 1인극이라는 생각을 지운 채 무대에 오르고 있다. 화자인 윤나무가 한 명 한 명의 삶을 진심으로 만나다 보면 120분은 의식하지 못한 채 훌쩍 지나가 있다. 이때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도 완전히 잊어버린다.
"눈물을 흘리다가도 순간 닦아내고 다른 인물로 변신해요. 테크닉은 없어요. 그 인물들 안으로 훅 들어가다 보면 상황과 생각이 바뀌어 버려요. 이 공연은 제 모습이 지금 어떻게 보일지 생각하는 순간 끝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각자의 24시간에 맞는 상황을 몰입하는 것 외엔 어떤 주문도 하지 못해요."
'삶을 소중히 여긴다고 죽음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누군가에겐 생의 마지막일 수도 있는 한순간이 누군가의 삶이 시작되는 때일 수도 있다. 작품은 생과 사에 대한 인식이 한쪽으로 치우쳐선 안 된다고 수없이 경고한다. "저희 형이 목사인데, '너 내일 당장 죽을 수도 있어'라는 말을 항상 해요. 그게 맞아요. 그래서 매 순간 살아있는 삶을, 박동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해요."
'장기기증'이라는 강렬하고도 복잡 미묘한 소재를 통해서도 질문을 던진다. 삶과 죽음의 경계, 죽음에 대한 윤리와 애도, 생명의 의미 등 접근하기 어려운 진지한 주제들을 다루며 성찰하도록 한다.
"리허설 후 촬영하고 지방에서 올라오는 길에 어머니한테 생뚱맞게 질문을 던졌어요. '엄마는 내가 뇌사상태가 외면 장기기증할 거야?'라고 물었죠. 시간이 지난 후 장문의 메시지가 왔어요. '아들의 심장이 어딘가에서 뛰고 있다면, 엄마한테는 그게 큰 위안이 될 거 같아. 당연히 기증하지 않을까? 아들의 마음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 마음은 그러네'라는 내용이었죠. 그 메시지가 힌트가 됐어요."
윤나무는 공연 자체가 '장기기증 독려 캠페인'이 되면 안 된다는 생각을 민새롬 연출과 나눴다고 했다. 다양한 인물의 시점을 통해 삶을 경험하고 생각할 수 있도록 돕는 작품일 뿐, 강한 메시지를 심어주려는 목적은 없다는 것이다.
"나는 어떤 걸 기록하며 살고 있는지 생각하실 수 있도록 만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아요. '인생은 이거야'라는 말을 하지 않아서 매력적인 텍스트예요."
그래서일까. 장기를 받은 자와 기증한 자의 입장을 신파적으로 그려내지 않았다는 것도 인상적인 작품이다. 시몽의 죽음에 매몰되지 않고, 새 삶을 찾는 사람의 기쁨을 판타지적으로 그려내지 않는다.
"균형을 맞추는 게 중요한 과정이에요. 순간순간 발동되는 무언가에 이끌림을 갖고 연기하지만, 더 가거나 덜 가는 건 경계하는 거죠. 혹자는 공연을 보고 신파라고 할 수도 있고, 또 다른 평가를 할 수도 있지만, 판단은 관객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그저 우리는 오늘, 지금, 24시간을 어떻게 기록하고 살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좋지 않을까요?"
초연 때보다 극장의 크기는 커졌지만, 조명, 음향 등 그 외의 조건은 그대로다. 더블 캐스팅으로 활약하고 있는 손상규와 민새롬 연출 등 스태프의 인생이 1년 6개월 더 늘어났을 뿐이다. 다만 공간이 바뀌면서 관객의 마음과 심장이 몇백 개가 더 늘어났다는 것을 윤나무는 실감했다.
"모든 순간 우리는 살아있어요. 간혹 '나 왜 이렇게 멍하게 살고 있지'라는 생각을 하시더라도,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공연을 보고 뛰었던 심장의 울림을 다시 느끼신다면 좋은 과정인 것 같습니다. 삶이 삐걱 댈 때마다 삶에 기름칠해줄 수 있는 작품으로 남고 싶어요."
윤나무는 인터뷰 중 '시몽의 몸은 우리가 손만 내밀어서 꺼내면 되는 장기 보관소가 아닙니다'라는 대사를 던졌다. 그러면서 "삶을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됐을 때 저는 무엇을 기록하며 세상을 떠날 수 있을까요?"라고 질문했다.
데뷔 10년을 맞은 윤나무는 늘 살아있는 배우이고 싶다. 잠시 멈춘 뮤지컬 공연도 다시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도 드는 요즘이다.
"드라마를 하면서도 연극을 하는 건 제가 무한한 순간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죠. 새로운 감각이 없으면 관객에게 탄로가 날 거예요. 늘 감각을 유지하며 무대 위에서 살아있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