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코노미] 농담 따먹기? 그 이상의 사회경제적 효과, 다큐 '밈 전쟁:개구리 페페 구하기'

입력 2021-06-18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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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코노미는 넷플릭스와 왓챠 등 OTT(Over The Top) 서비스에 있는 콘텐츠를 통해 경제와 사회를 바라봅니다. 영화, 드라마, TV 쇼 등 여러 장르의 트렌디한 콘텐츠를 보며 어려운 경제를 재미있게 풀어내겠습니다.

짙은 초록색 피부, 툭 튀어나온 커다란 눈알, 우수에 찬 눈동자, 왠지 우스꽝스럽게 느껴지는 슬픈 표정. 누구나 한 번쯤 봤을 밈(meme)의 대명사 '페페'다.

▲온라인에서 가장 유명한 밈(meme) 중 하나인 페페. 평범한 만화 캐릭터였던 페페는 2008년 미국의 악명높은 익명 커뮤니티 '4chan'의 눈에 띄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밈 중 하나가 됐다.

페페는 본래 만화 속 순수한 캐릭터였다. 하지만 미국의 악명높은 온라인 커뮤니티 '4chan'의 간택을 받으면서 백인 우월주의와 극우파의 마스코트로 사용된다. 페페의 원작자는 혐오의 상징물이 된 페페를 구하기 위해 이른바 '밈 전쟁'을 벌이는데, 다큐 '밈 전쟁:개구리 페페 구하기'(Feels Good Man, 2020)는 그 치열한 전쟁의 기록이다.

▲페페의 원작자 맷 퓨리는 작가의 자전적 모습과 어린 시절 경험을 투영해 툭 튀어나온 눈알이 인상적인 개구리 캐릭터 페페를 만들었다. (왓챠)

페페의 원작자 맷 퓨리는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개구리를 그렸다. 왠지 모르게 개구리에 마음이 갔다고. 맷은 그를 바탕삼아 2005년 자신의 모습을 닮은 캐릭터 '페페'를 창조했다. 페페가 등장하는 만화에는 대학 시절의 에피소드를 투영했다. 맷은 당시 가장 핫한 SNS 마이스페이스에 만화를 스캔해 올렸는다. 맷의 만화는 온라인에서 큰 주목을 받았고, 만화 속 페페의 대사 "Feels good man"이 유행어처럼 퍼져나갔다.

원작자의 손을 떠나 자유롭게 인터넷 바다를 헤엄치기 시작한 개구리는 익명의 손길에 의해 마음껏 변신하기 시작했다. 네티즌들은 페페를 단순히 따라 그리는 수준을 떠나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재창조했다. 대부분 다른 네티즌의 관심을 끌기 위한 원초적이고 자극적인 방식이었다.

4chan의 주 사용층인 사춘기 소년들은 관심을 끌기 위해 더 자극적이고 원초적인 글을 남발했다. 가시가 돋친 언사 속에 페페가 녹아들었다. 학교와 사회에서 소외된 니트족은 자신의 외로움과 패배 의식을 페페에 투영했고, 페페는 점점 극단의 영역으로 향했다. 2016년 대선 정국에서 백인 우월주의와 극우파의 마스코트로 사용될 정도였다. 결국, 작가는 페페를 찾기 위해 밈 전쟁을 선포한다.

▲다큐멘터리 '밈 전쟁:개구리 페페 구하기'는 제36회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고, 로튼토마토에서 신선도 지수 95%를 기록하는 등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왓챠)

심리학자이자 문화전파학자(memetist)인 수전 블랙 모어 박사는 페페의 사례가 "대표적인 밈의 진화론적 경쟁 사례"라고 설명한다. 밈은 끊임없는 모방을 통해서 전해지는 사회·문화적 요소를 말한다. 리처드 도킨스가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처음 설명했다.

생물학적인 모든 것이 유전자에 의해 좌우될 때, 우리 삶을 둘러싼 모든 것은 밈에 의해 좌우된다. 문화, 제도, 사물 관습 등 밈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게 없을 정도다. 밈은 끊임없는 자기 복제 과정에서 살아남기 위해 경쟁한다. 의자, 옷, 가방 등. 우리 주변의 모든 사물과 생활 양식이 끊임없는 경쟁의 산물이라 볼 수 있다.

▲미국의 영화관 체인 'AMC' 주가는 연초 이후 30배 가량 뛰며 급격한 변동성을 보이고 있다. 서학 개미들은 이달 들어 2조원 가까이 AMC 주식을 거래했다. (로이터)

밈은 사회문화적 영역을 넘어 경제 산업 전반에도 영향을 미친다. 밈이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되며 경제적 부가 가치를 창출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일찍이 광고계를 휩쓸었던 '4딸라', '묻고 더블로 가!', '깡' 등은 모두 온라인 밈에서 출발했다. 배우 곽철용은 "묻고 더블로 가!" 대사로 광고 제의를 120개나 받았다고 한다.

밈은 주식 시장도 흔들고 있다. 소셜 미디어나 커뮤니티 등지에서 입소문을 탄 종목이 주식시장을 휩쓰는 것이다. 지난 2월 개인 투자자들과 헤지펀드 사이 공매도 전쟁이 벌어졌던 '게임 스톱'과 영화관 체인 기업 'AMC'가 대표적인 밈 주식이다. 가치 투자의 관점에서 밈 주식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많으나, 여전히 투자 열기는 뜨겁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이달 들어 국내 주식투자자들의 AMC 거래액은 2조 원에 육박했다.

▲2019년 10월 1일 오후 홍콩 침사추이에서 중고교 학생 1500여 명이 참여한 송환법 반대 집회에 학생들이 초록색 페페(Pepe) 인형을 들고 인간 띠를 만들었다. (AP/뉴시스)

맷은 처음 페페가 익명의 사람들에 의해 변용되며 그려지는 걸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밈이 뭔지 제대로 몰랐다. 명백한 저작권 침해였지만 같은 예술가를 고소할 수는 없었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알았을 때는 자신이 만든 캐릭터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망가진 후였다. 하지만 그걸로 끝은 아니었다.

페페가 미국에서 극우와 혐오의 상징이지만, 지구 반대편에서는 희망과 민주주의의 상징이 됐다. 2019년 홍콩 민주화 시위 당시, 홍콩 시민들은 우산과 페페 인형을 함께 들었다. 한 홍콩 시민은 페페가 "나의 희망이 됐다"며 "이 찌푸린 얼굴도 언젠가 웃는 얼굴이 될거다"라고 말했다.

결국, 잘 쓰이면 이로운 화로가 되고, 잘못 쓰면 화마(火魔)가 되는 셈이다. 무한 복제하며 진화하는 밈들 중 어떤 밈이 경쟁에서 살아남을지는 우리 손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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