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일요일이야?” 착각이 들었다. 월요일인 21일 오전 10시, 경상북도 경주시 황리단길에는 주말처럼 사람이 많았다. 거리 초입에 서니 옆엔 천마총이 자리를 지키고 있고, 알록달록한 키 작은 상점가의 머리 위로 탁 트인 하늘이 보였다.
젠트리피케이션(둥지 내몰림)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확산으로 시름 하던 황리단길이 활기를 찾았다. 백신 접종이 시작된 데다 휴가철까지 겹치며 관광객이 늘고 있다. 경기도에서 왔다는 김모 씨(22)는 방학을 맞아 경주를 찾은 참이었다. 한옥을 개조해 운치가 넘치는 카페에서 만난 그는 “유적지를 보러 가기 전에 커피를 사러 왔다”며 “걸어서도 곳곳을 갈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상인들도 함박웃음이다. 황리단길에서 3년째 닭강정을 판매 중인 이승호(51) 씨는 “코로나 19 확산 세가 줄어든 지난해 하반기부터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며 “방학, 휴가가 있는 7~8월과 백신 접종 이후엔 더 좋아질 거라 기대한다”고 내다봤다.
황리단길이 주목받기 시작한 건 2017년부터다. 원래 황리단길은 오래된 선술집, 점집이 전부인 거리였다. 40~50년 전에나 도심으로 불렸지만 몇 년 전부터 ‘○리단길’ 열풍이 불면서 황리단길도 함께 떠올랐다.
황리단길만의 차별점은 ‘위치’다. 주요 유적지를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만큼 유동 인구가 많을 수밖에 없어서다. 내남네거리 방향 황리단길 초입에는 천마총이 있는 대릉원이 버티고 있다. 왕릉보다 낮게 깔린 상점들이 늘어선 황리단길을 가로질러 조금만 걸으면 첨성대, 월성 동궁과 월지 등이 있는 동부 사적지대가 나온다.
수제 맥주 가게를 운영 중인 전진숙(42) 씨는 “경주는 원래 관광지”라며 “차를 타고 30분만 나가면 바닷가고 근처에 유적지뿐만 아니라 경주 월드, 공원 등도 있어 사람이 많이 온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차별점은 황리단길을 유지하려는 지역 주민과 상인들의 노력이다.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고민하는 청년 대표들이 늘어난 점도 영향을 미쳤다.
빠르게 성장한 만큼 황리단길 점포들의 임대료가 계속 오르고 권리금도 6000만~8000만 원가량 발생하는 등 임대료 갈등이 일어나기도 했다. ‘착한 임대인’ 운동을 통해 임대인과 임차인의 상생을 꾀했지만, 임대인이 자주 바뀌어 이런 노력을 이어가기도 쉽지 않았다. 최근에는 대기업 점포가 진출하는 등 젠트리피케이션의 징후도 포착됐다.
골목 초입에서 만둣집을 운영하는 이병희(32) 씨는 “황리단길 임대료도 점점 올라가고 있고 젠트리피케이션도 70%가량 진행된 것 같다”면서도 “하지만 실제 (대기업 브랜드의) 입점으로는 이어지지 않은 데다, 구도심 대비 임대료가 낮았던 황리단길 시세를 고려하면 감당할만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황리단길 상인회를 조직하고 화합에 나섰다. 회장을 맡은 이 씨는 “스마트화 등 지원사업을 유치하려면 상인들이 뭉칠 필요가 있더라. 이런 거리는 상인들이 만든다”며 “젊은 사람들이 계속 장사하고 싶어하고 밀집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관건은 활발한 골목상권을 밖으로 확장하는 것이 됐다. 황리단길에서 걸어서 5분 남짓인 구도심의 경우 점심시간인데도 텅 비어 있었다. 곳곳에 임대 팻말을 내건 빈 점포도 많았다. 민속공예품, 의류 등 도소매업 상점이 많은 데다 사장님 연령대도 높아 변화를 꾀하기 어려운 점이 문제다. 도심지역이었던 만큼 좀처럼 내려가지 않는 임대료 역시 진입장벽을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