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매상들 말로는 동네 슈퍼마켓들이 죄다 망했대요. 망한 슈퍼 점포에는 편의점이 들어온다네요.”
서울 마포구 대학가에서 10년 동안 20평 남짓한 동네 슈퍼를 운영해온 사장 김 모 씨는 요즘 근황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22일 만난 김 사장은 하루 매출이 20만원도 안되는 날이 많다고 토로한다. 그는 "10년 전 처음 문 열었을때 하루 매출이 20만 원이었고, 3~4년 동안 고생해서 하루 150만~200만원까지 끌어올렸는데, 최근 손님이 줄면서 10년 전보다 매출이 못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동네 슈퍼의 위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김 사장은 요즘처럼 힘든 때는 없었다고 말한다. 언택트 소비 증가에 소량 구매까지 배송을 해주는 서비스가 늘면서 단골들마저 발길이 끊기는 것이 요즘이다.
김 사장은 “우리는 그야말로 단골 장사로 먹고 사는데 요즘 인터넷이다 뭐다 죄다 싸게 파니 학생들도 잘 안 온다”라면서 “처음엔 편의점에 고객을 뺏겼는데 요즘에는 온라인에까지 빼앗긴다”라고 하소연했다.
이른 바 ‘낀 점포’들이 울고 있다.
대형마트와 대기업 브랜드 편의점에 이어 최저가를 앞세우는 이커머스까지 동네상권에 뛰어들면서 골목 시장의 한숨이 커지고 있다.
이날 찾은 마포구 염리동 인근의 한 과일가게도 한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매대에는 수박, 참외, 멜론 등 여름 제철 과일이 먹음직스럽게 놓여있지만 손님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한청과' 윤 모 사장은 코로나19 이후 체감경기를 묻자 “예전과 상황이 아주 다르다”며 미간부터 찌푸렸다.
윤 사장은 아버지와 함께 같은 자리에서 30년 동안 과일 장사를 했다. 새벽시장에서 과일을 직접 경매받아 판매하는 그는 좋은 과일을 고르는 노하우를 갖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30년을 버텨왔다. 10년 전만 해도 과일 품질을 믿고 고객들이 일부러 찾아왔지만 2~3년 전부터 온라인 장보기가 본격화하면서 손님 수가 크게 줄었다고 했다. 윤 사장은 “요즘 사람들은 온라인에서 1원이라도 더 싸면 그걸 산다”라면서 “그나마 있던 상인들도 떠나 황량하다. 상인연합회도 없어서 상권을 살릴 방안을 상의하기도 어렵다”라고 말한다.
자본력을 앞세워 당도까지 관리하며 계약재배를 하는 대형마트나 이커머스와 경쟁한다는 건 사실상 어불성설이다. 롯데마트 등 전통 유통기업부터 세븐일레븐, GS리테일 등 편의점까지 배송경쟁력은 물론 신선식품을 강화하며 소비자들을 사로잡는 실정이다. 또 빠르게 배송하는 것은 윤 사장이 흉내조차 내기 어렵다.
윤 사장은 "갈수록 소비자들이 인스타그램 감성이라고 해서 깨끗하고 보기에 좋은 걸 좋아하지 않느냐"라면서 "우리 매대에 있는 물건 전부를 갖다놔도 대형마트 매대 하나 정도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커머스나 대형마트와 경쟁에서 밀리는 슈퍼마켓뿐 아니라 식당이나 미용실 등의 동네 점포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영등포구 신도림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장 모 씨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매일 매장 문을 열지 않는다.
"젊은 사람들은 수십만원씩 하는 유명 미용실 체인만 찾는다. 요즘 동네 미용실은 어르신들이나 아이 엄마들만 간간히 오는데 계속 문을 열고 있는 것보다 예약 고객이 올 때만 여는 게 여유도 있고 매장 운영 비용도 줄일 수 있다"는 게 장 씨의 설명이다. 그는 단골들이 예약을 하는 시간에만 잠깐씩 문을 여는게 오히려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신도림에서 분식점을 운영하는 이 모 씨는 버티다 최근 배달 대행 업체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매장을 방문하는 고객이 크게 줄어든 탓도 있지만 대형 프랜차이즈 분식점들이 배달 지역을 늘리면서 매장 매출이 눈에 띄게 매출이 줄었기 때문이다. 그는 주방에 직원을 두고 가까운 거리는 직접 배달을 했지만 아무래도 배달 지역이 협소해 한계가 있었다. 이 씨는 "배달 대행 업체를 이용하는 비용이 부담스럽지만 당장 배달을 하지 않으면 옆동네 프랜차이즈 분식점에 고객을 모두 뺏길 수 있다는 위기감이 크다. 지금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