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청 연출 '빈센트 리버' 데이비 역 강승호 인터뷰
빈센트가 세상을 떠난 후부터 아니타의 주변을 맴돈 17세 소년 데이비 역할을 맡은 배우 강승호를 만났다. 강승호는 "작품에 대해 동성애와 혐오, 편견이라는 틀을 짜고 보는 이들이 많다"며 "더 큰 범위 안에선 서로의 아픔을 들어줄 수 있는, 공감이 더 앞에 있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그날의 사건, 각자가 처한 아픔을 서술하는 이는 데이비다. 데이비의 독백을 통해 아니타와 데이비의 상처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아니타는 아들의 죽음과 동성애 사실이 지역의 이슈가 되면서 비난을 견디다 못해 낡은 아파트로 도피하듯 이사한 상황이었다. 데이비는 빈센트가 세상을 떠난 이후 계속해서 아니타의 주변을 맴돈다. 극이 진행되면서 신경안정제 없인 제대로 된 잠도 잘 수 없었던, 술 없인 마음껏 이야기할 수 없었던 두 사람의 아픔이 통으로 다가온다.
"미혼모, 동성애, 마약 등 묵직한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결국 서로가 어떻게 아픔을 치유해줄 수 있는지에 중점을 뒀어요. 동성애에 대해 남자와 남자라는 프레임을 씌우니 어려워 보이는 것 같아요. 전 결국 '사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니타와 데이비가 보여주는 다양한 모습들도 빈센트라는 사람을 만나기 위한 여정인 거죠."
강승호는 데이비를 "많은 가면을 씌운 채로 가면 속에서 힘겹게 숨 쉬고 있는 인물"이라고 해석했다. 등장부터 날 선 분위기를 풍기는 데이비를, 강승호는 "타자의 시선에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보다 타자에 집중된 모습을 보며 자신을 대입시키기도 했다.
"저와 데이비의 공통된 키워드는 '공감'이에요. 타인을 공감하면서 감각적인 부분에서 예민한 지점이 닮았어요. 저 역시 외적인 반응보단 내적 공감이 있는 편이에요. 물론 데이비와 제가 경험한 삶은 너무나도 달라요. 저와 데이비는 30%가 닮았고, 70%는 다른 것 같아요. 그래서 데이비란 인물을 이해하기 위해 데이비에게 강승호로서 편지를 써보기도 했어요. 가장 친한 친구가 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강승호는 '빈센트 리버' 대본을 처음 받은 순간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 대본 안에 지문이 많지 않은 데다 독백이 상당히 길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작품은 배우의 독백이 재연 형식으로 풀어나가는 게 아닌, 배우가 무대 위에 누워 음성으로 전달하는 방식으로 흘러간다. 데이비의 감정이 확산하면서 관객에게 상황이 전달되는 식이다.
"장황한 대사를 어떻게 풀어나갈지에 대한 막막함과 호기심 그리고 기대감이 있었어요. 잘해낸다면 체득할 게 정말 많다고 생각할 정도로 독백이 길어요. 또 어떤 목표치까지 관객의 감정을 끌어내기 위해 더욱더 데이비의 감정에 집중하려 했습니다."
신유청 연출의 세밀한 디렉션의 도움도 있었다. 강승호는 "연기자들의 고착된 지점을 탈피시키기 위해 굉장히 많은 디렉팅을 해주셨다"고 했다. 이후 대사 하나하나가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에 대한 고민 과정을 거쳤다. "공연마다 살면서 처음 내뱉는 말처럼 대사하는 게 배우의 숙명인 것 같아요."
데이비가 아니타의 집 앞을 서성인 건 빈센트 혹은 아니타에게 용서를 비는 행위일 수도 있다. 강승호가 데이비였어도 아니타를 찾아갔을까.
"제가 데이비란 인물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그를 이해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저 역시 같은 행동을 했을 거예요. 죽도록 말하고 싶지만 죽도록 무서운 데이비의 마음을 이해해요. 또 데이비는 아니타와 대화를 하면서 아니타 역시 편견과 프레임 속에 살아온 인물이라는 걸 알게 돼요. 그렇게 공감이 생기고 끝까지 갈 수 있었던 것 아닐까요?"
강승호는 시나리오를 받으면, 자신과 인물의 닮은 지점과 다른 지점 그리고 시도할 수 있는 부분을 찾는다. 신작 초연을 할 때마다 설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때로는 넘어질 수도 있지만, 이를 통해 자신이 성장할 때 행복감을 느낀다.
"관객의 박수 소리가 유독 더 크게 느껴지는 날이 있어요. 그럴 때마다 '넘어졌지만 잘 일어섰다'는 응원을 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요. 앞으로도 잘 넘어질 수 있는 과정을 겪게 해줄 작품을 만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