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공동지점, 출혈경쟁 가속” 난색
금감원 “대체 창구·대리점 검토”
협회, 고령자 전용 홈페이지 준비
시중은행 영업 점포가 비대면·디지털 금융거래의 확산으로 빠르게 사라지면서 금융 소비자의 금융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공동지점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은행권의 점포 통폐합은 막을 수 없는 흐름이지만, 소비자의 금융 접근성 악화라는 부작용이 분명한 만큼 대체 창구를 준비하는 등 대응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12일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실과 이투데이 취재를 종합하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국내 5대 시중은행의 영업점은 지난해 236개 감소한 데 이어 올해 상반기에만 89개가 문을 닫았다. 올해 하반기에는 153개의 점포 폐쇄가 예정돼 있다.
◇코로나19로 점포 폐쇄 가속도 = 금융당국은 문을 닫는 은행 점포수가 매년 늘어나자 은행 지점 폐쇄 시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영향평가를 하도록 했다. 은행권은 ‘은행 점포 폐쇄 관련 공동 절차’를 도입해 폐쇄 예정 지점의 고객 수·연령대 분포, 대체수단 존재 여부 등 중심으로 평가를 진행하고 점포 폐쇄가 결정된 경우 해당 점포 고객에 대해 원칙적으로 폐쇄 3개월 전에 공지하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촉발된 비대면·디지털 영업환경의 변화는 점포 폐쇄의 속도를 늦추지 못하고 있다. 은행은 자금 이체 등 단순 업무를 넘어 주택담보대출 등 기존엔 대면으로 이뤄졌던 업무까지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비대면 상품으로 출시하고 있으며, 인공지능(AI) 은행원 확대 등 혁신 기술을 접목한 디지털 금융을 추진하면서 대면 점포의 역할을 점차 줄여가고 있다.
은행 점포의 축소는 온라인 거래가 서툰 금융소외계층에겐 직격탄이 될 수 있다. 일례로 고령층의 경우 최근 모바일 이체·출금 중심으로 온라인 거래 비중이 증가하고 있으나, 예금·대출 등 절차가 다소 복잡한 거래의 경우 여전히 온라인 비중이 매우 낮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65세 이상 온라인 거래비중(이체·출금)은 2016년에는 28.9%에 불과했으나 작년 3월 69.9%까지 확대됐다. 다만 신용대출이나 예금에 있어서 이들의 온라인 거래 비중은 각 12.4%, 7.0%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폐쇄 점포 인근에 지점이 없거나 금융소외계층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공동지점 등의 대안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공동지점은 은행간 협약을 통해 영업점을 공동으로 운영하는 형태로 영국, 일본 등 해외에선 이미 점포 축소 대응을 위해 시중은행이 시행하고 있다.
◇ ‘공동지점’ 책임소재 한계 지적 = 우리나라 역시 지난해 8월 금융위에서 이동·무인점포·창구제휴 등 대체창구 공급을 활성화하는 방안이 나왔지만 한계가 있는 상황이다. 은행권에선 여전히 공동지점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지점 관리의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고 한 공간에서 은행별 상품 비교가 돼버리면 출혈 경쟁이 시작되는 등 영업 환경이 악화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A 은행 관계자는 “공동지점을 운영할 시 은행간 출혈 경쟁이 가속화될 뿐더러 금고 운영이나 점포 관리에 허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메타버스 등 디지털을 활용하거나 무인점포 등을 통해 대체 창구를 운영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대안인 은행 대리점 역시 아직까지 가시화된 부분은 없다. 은행의 업무를 우체국 등 상호금융 지점이나 편의점 등에서 볼 수 있도록 하는 은행 대리업 제도는 일부 은행에서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아직 구체화된 부분은 없다. 우체국 등 상호금융의 창구를 활용하는 방안은 기업은행, 산업은행 등 일부 은행이 제휴하고는 있으나, 여전히 시중은행의 참여도가 떨어지는 실정이다.
금융감독원 고위 관계자는 “최근 숫자가 늘어나고 있는 상호금융 지점을 활용해 대체창구를 마련하거나 편의점에 있는 ATM기기처럼 기본적인 업무는 은행 대리점을 통해서 하는 방안 등도 검토 중”이라며 “공동지점 등 일부 방안에 대해 권하고 있으나 은행들이 책임 소재를 가리기 힘들다며 진척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오프라인 대체창구 마련과 동시에 금융 소외계층에 대한 온라인 접근성을 높이려는 여러 방안도 나오고 있지만, 실효성이 크진 않은 상황이다. 여러 은행에서 고령자들도 보다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일반 앱과 구분된 ‘고령자 전용 모바일금융 앱’이 출시되고 있고 금융업권 협회별로 홈페이지에 고령자 전용 비교공시 시스템 등을 별도 구축하고 있으나 그 기능이 글씨를 크게 보이는 데 그치고 있다. A 협회는 “공시실 개편이 사실상 어렵고 인터페이스를 바꿔서 또 따로 만드는 것 보다는 좀더 고령층이 들어왔을 때 편하게 볼 수 있게 글자를 키운 것”이라고 말했으며, B 협회는 “내용을 직관적으로 바꾸려는 작업 중으로 글자를 키울 수 있는 기능을 넣어 8월 중 홈페이지를 개편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유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