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우 한국정신건강사회복지사협회 회장·지역사회전환시설 우리마을 시설장
옥상 정원 아래 네 개 층에는 다소 까다로운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 조현병, 조울병, 우울증으로 마음 아픈 이들이 입원치료를 받고 퇴원한 뒤, 이곳에서 몇 달간 머물며 회복과 독립생활을 준비하기 위함이다. 우리마을에 두 달 전에 입소한 민수 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 서른이 될 때까지 자기 방에서 나오지 않고 은둔형 외톨이로 살아왔다. 가족뿐 아니라 친구와의 대인관계를 끊고 사이버 세계로 은둔하였다. 급기야 조현병으로 입원치료를 받고 우리마을에 입소한 후에도 편의점과 흡연실에 갈 때 외에는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늘 이어폰을 끼고 있어 어깨를 두드려 불러야 겨우 한마디 들을 수 있다. 그는 지금 옆에 있는 누구와도 관계를 원치 않는 것처럼 보인다. 민수 씨도 능소화처럼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다. 가족과 담당 사회복지사도 애쓰고 있는데, 왜일까? 사회복지사도 조금씩 지쳐간다.
인간관계에 대한 욕구는 본능이고 삶의 가장 큰 부분이다. 그래서 인간관계 문제로 병이 생기고, 또 병을 낫게 하는 것도 주위의 관심과 소통으로부터 가능한 것이다. 밀림에서 홀로 사는 호랑이는 결코 조현병에 걸리지 않는다. 민수 씨도 관계 문제로 조현병이 생겼을 것이고, 회복을 위해서는 주위의 관심과 사랑과 소통이 필요하다. 그러나 다시 관계를 풀어갈 방법을 우리는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시간’이라고 위안을 삼는다.
식물은 물과 거름만으로 꽃을 피워낼 수는 없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결국 햇볕. 햇볕은 무한 동력이다. 민수 씨에게도 무한 동력, 사랑과 관심이 필요하리라. 햇볕은 끝없는 힘을 내려주고 있지만, 사람의 사랑과 관심은 때때로 소진이 온다. 민수 씨도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의 한계를 알고 있을는지. 그러나 내년 여름에는 능소화가 꽃을 피우고 민수 씨도 꽃을 피울 것이라 믿고 싶다. 코로나와 뒤범벅된 유난스러운 더위도 한 달 남짓이면 떠밀려날 것이다. 우리도 계절의 정거장에 오래 머물 수 없다는 것을, 밀려오는 가을을 새삼 저만치 내다본다.
황정우 지역사회전환시설 우리마을 시설장·한국정신건강사회복지사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