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약 2년 늘어 '월세 품귀' 현상 심화
임대료 규제 추가 땐 '전세 절벽' 우려
새 임대차2법(계약갱신청구권제·전월세상한제)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났지만 시장은 혼란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세난 심화로 전세를 구하지 못한 세입자가 월세시장으로 밀려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기존 전셋집의 전세 계약을 2년 더 연장할 수 있는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는 세입자들이 많아지면서 연쇄적으로 나타난 현상이다. 보유세(재산세+종부세) 부담이 커지면서 전세 대신 월세를 내놓는 집주인도 늘었다.
곽창석 도시와공간 대표는 "갑자기 오른 전셋값을 감당하기 어려운 세입자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월세 쪽으로 눈을 돌리는 경우가 많다"며 "임차인의 주거 보호를 명분으로 도입한 제도가 서민들의 주거비 부담만 더 가중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말했다.
월세가 임대차 거래 30% 넘는 지역, 법 시행 전 7곳서 19곳으로 급증
1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해 7월 개정 임대차법 시행 이후 반전세 등 월세를 낀 임대차 거래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새 임대차2법이 도입된 직후인 작년 8월부터 올해 7월까지 1년간 서울 아파트 전월세 거래는 총 17만6163건에 달했다. 이 중 순수 월세나 월세를 조금이라도 낀 형태(준전세·준월세) 거래는 6만1403건으로 전체 임대차 거래의 34.9%를 차지했다. 이는 새 임대차법 시행 직전 1개월(재작년 8월∼작년 7월)간 임대차 거래 중 월세 형태 거래가 28.1%(5만5091건)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6.8%포인트 증가한 것이다.
지난 1년 동안 전체 임대차 거래 중 월세 거래 비중이 30%도 안되는 곳은 노원(28.6%)·도봉(26%)·강북구(28.1%)을 비롯해 은평·(29.2%)·양천(21.8%→28.9%)·광진(24.5%→28.0%) 등 총 6곳이었다. 나머지 19곳에선 월세 거래 비중이 30%를 넘었다는 의미다. 법 시행 직전 1년간 이 비중이 30%를 넘었던 곳은 단 7곳에 불과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서울 아파트 임대차시장에서 월세 비중이 이처럼 늘어난 건 저금리에다 보유세 인상이 예고됐던 데다, 전셋값이 급등하면서 인상분을 월세로 돌리는 집주인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임차인 입장에선 서울 곳곳에서 전세 품귀 현상이 벌어지고, 설령 전세 물건이 있어도 전셋값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뛰면서 월세로 방향을 틀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월세를 찾는 수요가 늘면서 수급(수요와 공급) 논리에 따라 월셋값도 상승세를 타고 있다.
서울 마포구 '마포 래미안 푸르지오' 아파트 전용면적 84㎡형은 작년 초 전셋값이 8억~8억5000만 원이었으나 지금은 10억~10억5000만 원 선으로 올랐다. 이 면적의 반전세 거래는 지난해 6월 전세보증금 3억 원, 월세 160만 원에서 지난달 보증금 4억 원에 200만 원 수준까지 올랐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은 "임대차법 시행 이후 전세의 월세 전환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며 "결국 부담은 매달 수십만에서 수백만 원의 월세를 내야 하는 세입자들이 떠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세의 월세 가속화와 전세 '이중 가격' 현상(전세 갱신계약 물건과 신규 계약 물건간 전세보증금의 차이가 크게 벌어지는 것) 같은 부작용에도 정부는 임대차법을 다시 강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규제로 인한 부작용을 또다른 규제로 덮으려 한다는 지적이 많다.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달 말 "앞으로 1년 뒤면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한 세입자들의 계약이 다시 만료된다"며 "그 전에 신규 계약 시 임대료 책정 권한이 건물주에게 집중된 불평등한 계약관계가 개선될 수 있도록 입법적 보완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주택 임대차시장 규제를 신규 계약으로까지 확대하겠다는 뜻이다.
여권 내에선 계약갱신 기간을 2+2+2년, 즉 6∼8년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전셋집을 새로 구해야 하는 세입자의 부담을 줄여주기 차원이라지만, 전문가들은 되레 민간 임대주택 공급 감소로 불안한 전월세시장에 기름을 부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임대료 규제를 더 가하면 집주인들은 전세를 유지할 이유가 사실상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임대료 상한을 신규 계약으로까지 확대 적용할 경우 가격 왜곡을 불러올 뿐만 아니라 전세난을 더 부추질 가능성이 크다"며 "전세 매물 감소로 인한 시장 불안을 잠재우려면 잘못 끼운 첫 단추(임대차법)를 다시 끼워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