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필
새 임대차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났다. 전문가들이 수없이 잘못을 경고하고 야당도 반대했지만, 거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작년 7월 30일 국회에서 날치기하듯 밀어붙였다. 3법 가운데 계약갱신청구권제와 전월세상한제가 다음날 곧바로 시행에 들어갔다. 세입자가 집주인에 1회 계약갱신(2+2년)을 요구할 권리를 갖고, 전월세 인상률이 5%를 넘지 못하게 한 내용이다. 4년 동안은 전셋값 오를 걱정이 없도록 세입자를 보호한다는 취지는 좋았다. 이후 어떻게 됐나.
전셋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시장을 대혼란으로 몰아가 서민 고통만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 우리가 목도하는 현실이다. ‘전세난민’이 속출하고, 서울 외곽의 매매수요를 부추겨 수도권 집값도 폭등했다. 얼치기 이념의 착각, 경제상식을 거스른 무식한 정치가 정책을 멋대로 재단하면서 시장의 복수를 불러온 결과다.
새 임대차법 시행 전인 작년 6월 중순 이후 1년간 전국 아파트 전셋값이 10.26% 올랐다(한국부동산원). 이전 1년 상승률 2.18%의 5배 수준이다. 주간 단위 전셋값 조사에서도 2년 동안 한주도 쉬지 않고 계속 오름세다. KB국민은행 조사에서는 7월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이 6억3483만 원으로 1년 전보다 27.2% 뛰었다. 경기도는 31.4% 폭등했고, 전국으로는 22.7% 상승률을 보였다. 임대차법 이전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전셋값은 연간 높아야 5% 수준으로 오를 만큼 안정적이었다.
계약갱신청구권으로 4년간 임대료가 묶이게 되자, 집주인들이 전셋값을 미리 올리거나 월세로 전환했다. 임대료 인상 상한을 5%로 통제하니 살던 집에 눌러앉는 세입자가 많아졌고 신규 전세물량이 급격히 줄어 가격이 치솟았다. 이 과정에서 집주인과 세입자 간 분쟁이 크게 늘었다. 같은 아파트, 같은 평형인데도 계약을 갱신한 세입자와 신규 입주자의 전셋값이 몇억 원씩 차이 나는 이중계약 구조가 일반화됐다. 재계약 때 법이 강제한 5%보다 실제로는 훨씬 많은 임대료를 낸 세입자도 많다.
앞으로가 문제다. 갱신청구권을 행사한 세입자들도 ‘2+2년’의 거주가 끝나면 크게 오른 전셋값을 더 내거나 싼 곳으로 옮겨야 한다. 계속 불안하다. 당장 내년부터 불거질 전세시장의 뇌관이다. 전세난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서울의 올해와 내년 새 아파트 입주물량은 예년보다 30% 이상 줄어들 전망이다. 전셋값 폭등이 매매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다시 전세가격을 올리는 악순환이 불가피하다.
사정이 이런데도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임대차법으로 임차인 다수가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 자화자찬했다. 계약갱신율이 높아지고, 재계약의 임대료 인상률이 낮아져 서민 주거안정에 기여한다는 주장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딴 세상 얘기로 고통받는 서민의 염장을 질렀다.
임대차법 폐해가 심각하자 민주당은 보완을 말한다. 그런데 나오는 얘기가 황당하기 짝이 없다. 갱신계약의 ‘2+2+2년’ 또는 그 이상 보장, 신규 계약에도 임대료 인상률을 제한하는 방안이다. 그나마 서민주거의 버팀목이자 내집마련 사다리인 전세제도를 무너뜨리고, 사유재산 보호와 사적계약 자유에 기반한 시장경제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문제가 뭔지도 모르고 있다. 얼마나 더 엉망으로 몰아가겠다는 건가.
지난주 홍남기 부총리는 대국민 담화문까지 발표했다. 또다시 집값이 고평가돼 거품이 끼어 있다며 큰 폭 하락할 것이니 추격매수를 자제하라고 경고했다. 가격이 소득에 비해 너무 높고, 한국은행의 금리인상이 임박한데다 금융당국도 돈줄을 조인다고 한다. 공허하기 짝이 없다. 온갖 규제의 범벅으로 시장을 망가뜨려 놓고, 하다 하다 안 되니 정부가 이제 국민을 겁 주는 심리전(心理戰)에까지 나선다.
문재인 대통령은 “집값은 자신 있다. 주머니 속 대책이 많다”고 주장했었다. 허언(虛言)이 됐다. 정부가 무어라고 해도 국민은 믿지 않고 시장의 역풍만 부른다. 경제의 기본도 모른 채 현실을 외면한 무지(無知), 시장과 거꾸로 가면서 싸워 이기겠다는 오만, 부동산으로 국민을 편갈라 표를 얻겠다는 잘못된 정치와 정책의 무능이 낳은 끊임없는 헛발질이 그렇게 만들었다. kunny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