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추장은 해외에서 제형을 바꿨다. 대상은 걸죽한 고추장 제형에 익숙하지 않은 해외 소비자 공략을 위해 초장처럼 묽은 고추장을 선보여 호평받고 있다. 케첩이나 스테이크 소스처럼 묽은 제형에 익숙한 해외 소비자들에게 고추장이 한국을 알리는 대표 소스로 자리잡은데는 제형의 변신이 주효했다.
라면부터 만두, 김치, 장류, 주류까지 토종 먹거리가 세계 시장을 누비고 있다. 정부가 한식세계화를 표방한지 10여년이 지난 현재 ‘K푸드’는 연일 수출 신기록을 새로 쓸만큼 세계인의 음식으로 자리잡았다. 농심은 전세계 라면 시장 5위에 올랐고, CJ제일제당의 비비고 만두는 2018년에 해외 매출이 내수 매출을 넘어섰다.
이 같은 해외시장의 선전 뒤에는 국내 식품기업들의 현지화 전략이 있었다. 제품 제형을 바꾸고 현지인에 익숙한 조리법을 개발하고 용량도 현지에서 즐기기 편하게 바꾼 결과 ‘K푸드’의 위상은 한층 높아지고 있다.
농심은 일본 마루찬을 잡고 세계 4위 라면 기업 도약을 목표로 하고 있다. 글로벌 1위 라면 기업은 중국의 캉스푸다. 캉스푸는 해외 매출 비중이 낮음에도 중국 내수 시장 비중이 워낙 높아 세계 1위 라면 기업에 올랐다. 사실상 내수용인 캉스푸를 제외하면 농심은 현재 세계 4위권 라면 기업으로 볼 수 있다.
농심은 해외 식습관에 주목해 현지화 전략을 폈다. 서구권에 선보이는 라면의 면발 길이는 아시아권보다 짧다. 젓가락보다 포크에 익숙한 이들이 먹기 편하도록 배려한 조치다. 전자레인지로 간편하게 조리하는 비빔면도 현지 식문화를 고려한 결정이다. 매운맛을 선호하는 동남아 지역에는 특별히 더 매운 ‘신라면레드’와 ‘신라면레드컵’을 선보였다. 두 제품은 기존 신라면보다 3배 이상 매운 맛을 자랑한다. 영화 ‘기생충’으로 화제가 된 짜파구리의 경우 짜파게티와 너구리를 섞어서 조리하는 방식이 익숙하지 않은 해외 소비자를 위해 두 제품을 혼합한 ‘짜파구리’ 제품도 개발해 내놨다.
CJ제일제당의 비비고 만두는 지난해 세계 만두 시장에서 매출 1조 300억원을 달성했다. 특히 글로벌 매출은 6700억원으로, 전년 대비 약 30% 성장했다. 글로벌 매출 비중은 2018년 처음으로 50%를 넘어선 데 이어 지난해엔 60%를 돌파하며 진정한 글로벌 제품으로 거듭났다.
특히 미국 시장에서 약진이 두드러졌다. 2016년부터 미국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비비고 만두는 지난해 미국에서만 4200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국내 매출보다 미국에서 더 많은 매출을 기록한 셈이다. CJ제일제당은 현지에서 선호하는 식재료를 만두에 담아 성공했다. 미국에서는 닭고기와 실란트로(고수)를 선호하는 현지 식문화를 반영해 ‘치킨&실란트로 만두’를 개발했고 중국에서는 옥수수와 배추를 많이 먹는 식습관을 반영해 ‘비비고 옥수수 왕교자’ ‘비비고 배추 왕교자’ 등을 내놓았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비비고 만두는 철저한 준비와 지속적인 투자를 바탕으로 매년 매출이 확대되면서 한국 식문화의 세계화를 이끄는 선두주자로 확실히 자리잡았다”라고 밝혔다.
대상은 현지 맞춤형 제품 다각화와 글로벌 인증 획득 제품 확대로 글로벌 시장에서 꾸준한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김치와 고추장을 중심으로 미국과 유럽, 아시아를 비롯해 중동까지 시장을 넓혀 나가고 있다. 종가집 김치의 지난해 미국 수출액은 12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2배 성장했고, 태국, 싱가포르, 카타르 등도 2배 이상 수출이 늘었다.
코로나19로 인해 면역력에 대한 전 세계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김치가 면역력 강화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를 적극 알린 마케팅 덕이 컸다. 수출 국가별로 감칠맛과 단맛을 강화하기도 하고, 매운맛의 강도를 조절해 현지인들을 겨냥했다. 액젓을 뺀 '피시 프리(fish free)' 김치도 현지화 제품 중 하나다.
수출용 순창고추장의 정식 명칭은 ‘내추럴고추장(Korean Chilli Sauce)’이다. 이 고추장은 테이블 소스처럼 뿌려 먹을 수 있는 묽은 제형이 특징이다. 현지인들에게 익숙한 소스 사용법을 고려해 제품을 바로 세워놓을 수 있는 스탠딩 타입 패키지도 적용했다.
동원F&B의 '양반김'은 미국 내 마트에서 수산가공품 코너가 아닌 스낵코너에 당당히 자리했다. 반찬 개념이 없는 현지 시장 공략을 위해 ‘김’을 수출할 때 스낵류로 품목을 선정한 결과다.
소주는 ‘K푸드’와의 마리아주(궁합)를 강조한 덕에 해외 시장에서 새 역사를 쓰고 있다. 하이트진로는 동남아 지역에 주점을 운영하며 소주와 어울리는 안주를 적극 알린 결과 동남아 MZ세대들 사이에서 ‘핫’한 술로 인기를 끌고 있다.
문경선 유로모니터 식품&영양 총괄연구원은 "과거엔 한국 전통의 맛을 잘 전달하는 것이 한국 식품 수출의 기본이었다면, 이제는 음식 자체가 갖고 있는 특징이 현지인들의 입맛과 식문화에 잘 어울릴 수 있도록 각색하는 것이 K푸드 성공 공식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문 연구원은 "언택트 시대 글로벌 소비자들은 가상 식도락 여행에 점차 익숙해지고 있다. 이는 적은 비용으로 현지인들의 취향을 파악할 수 있는 훌륭한 마케팅 수단으로도 떠오르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 이제 막 발을 들인 K푸드에 어느 때보다 좋은 기회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