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빵' 중계 도돌이표…선수들 "더 많은 관심을"
"이번처럼 한국에서 사이클 중계를 하는 일이 흔치 않다. 제가 더 잘했으면 사이클이 미디어에 더 많이 노출될 수 있었는데, 제 결과가 좋지 않으니 아쉽다"
4일 경기를 마치고 취재진 앞에 선 사이클 국가대표 이혜진 선수는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이혜진은 이날 일본 시즈오카현 이즈의 이즈벨로드롬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사이클 트랙 여자 경륜 패자부활전을 3위로 마쳤다. 지난해 세계랭킹 1위까지 올라 이번 대회 메달 후보로 꼽혔기에 아쉬운 성적이었다.
이혜진은 믹스트존에 멈춰서 고개를 숙이고 한참을 울다가 "죄송하다"는 말부터 꺼냈다. 그간 한국 트랙 사이클을 짊어져 왔기에 도쿄올림픽을 통해 사이클을 더 많이 알리고 싶은 마음이 컸으나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이혜진은 도쿄 올림픽에 출전한 유일한 한국 트랙 사이클 선수기도 하다. 지원과 관심은커녕 동료도 없이 올림픽이란 큰 무대를 홀로 준비해 외로움도 컸다. 이혜진은 "힘들 때 같이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저를 잘 아는 사람들이 주변에 없어서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혜진은 "그런 와중에 관심을 두신 분들이 계셔서 감사하다"며 "지속해서 많은 관심 가져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예전보다 나아졌다고 하지만, 이번 올림픽에서 비인기 종목에 대한 홀대는 여전하다. 특히 야구나 축구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모든 방송사가 다른 종목을 모두 제쳐두고, 같은 경기만 중계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지난 1일 역도 여자 76㎏급 A조 경기에 김수현이 출전했으나 생중계를 해주는 곳이 없었다. 메달이 걸린 경기였으나 같은 시간대에 열린 남자 야구와 육상 경기 때문이었다. 동시간대에 열린 여자 농구 세르비아전은 케이블 채널에서만 방송됐다.
같은 날 요트 레이저급에서 한국 최초로 메달레이스에 오른 하지민의 경기 역시 중계로 볼 수 없었다. 하지민은 이날 요트 남자 1인승 딩기 레이저급 메달레이스에서 최종 7위를 차지하며 한국 요트의 역사를 새로 썼다.
앞서 하지민 선수는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고도 언론 보도가 되지 않아, 직접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을 올린 바 있다. 그는 당시 "요트 경기를 산웨이에서 하는 바람에 한국 언론에서 아무도 안 왔다"며 "아이폰으로 시상식을 촬영해 놨다"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배드민턴 남자 단식의 허광희가 세계 랭킹 1위인 일본의 모모타 켄토를 누른 대이변 역시 TV에서 볼 수 없었다. 그 밖에 태권도 이대훈 선수 은퇴 전 마지막 경기인 동메달 결정전, 한명목 선수가 4위로 마무리한 역도 동메달 결정전, 여서정 선수가 결승 진출 티켓을 따낸 여자 기계체조 예선전 등도 방송에서 볼 수 없었다.
야구·축구 '중계몰빵'으로 시청자들의 분노가 폭발한 건 지난달 31일 여자 배구 한일전이었다. 같은 시간대 미국과의 야구 예선전, 멕시코와의 축구 8강전 경기가 열리면서다. 경기 당일 지상파 3사는 7시에 가장 먼저 시작한 야구 중계를 했다. 그러다 8시에 축구로 중계를 넘겼고 축구가 패하자 뒤늦게 여자배구로 편성을 돌렸다. KBS의 온라인 채널 ‘도쿄올림픽2’와 케이블채널인 KBSN, MBC 스포츠 플러스, SBS스포츠만이 여자배구경기를 방송했다.
선수들의 감동 드라마가 대중에 전해지기 위해서는 생방송 중계가 필수적이다. 육상 불모지 한국에서 높이 뛰기 우상혁이 이번 올림픽 이후 스타로 거듭난 것은 그가 좋은 성적을 거둔 만큼, 경기 내내 그가 내뿜은 밝은 에너지가 시청자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이다. 높은 관심을 선수를 향한 지원과 후원으로 이어진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도쿄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국민의 시청권 보호를 위해 지상파 3사에 순차 편성을 권고했다. 하지만 방통위가 권고했을 때에는 이미 방송사들이 축구·야구 시간대 중심의 광고 판매를 마친 뒤였다. 그나마 KBS와 MBC는 TV 송출 중계화면 외 각각 홈페이지에 ‘도쿄올림픽’ 채널 6개, ‘도쿄올림픽 라이브’ 채널 2개로 그날 중계하지 않은 경기를 라이브 영상으로 내보내고 있다.
한편 5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과거 김연경이 배구 종목 홀대에 섭섭함을 표한 글이 재조명 되고 있다. 김연경은 2011년 12월 4일 페이스북을 통해 "축구와 배구 스포츠의 차이도 있겠지만 너무 관심이 없다”며 섭섭함을 드러냈다.
그는 "물론 축구나 야구처럼 그 정도의 관심을 가져달라는 건 아니지만 내가 지금 터키 리그에서 열심히 한국을 알리고 열심히 뛰고 있을 때 한국에서는 나한테 무엇을 해주고 있느냐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바라는 건 조금의 관심이다. 이런 부분이 너무 안타깝고 가끔은 이런 현실이 슬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