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사태 예의주시하며 초긴장 상태
총수 복귀 시 투자ㆍM&A 본격 시동 걸 듯
취업제한 등 여전히 리스크 남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가석방 심사를 하루 앞두고 재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가석방 시 총수 부재 리스크 장기화로 사실상 멈춰 섰던 삼성의 ‘투자 시계’에 다시 가동될 것이라는 기대감과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는 날 선 분위기가 동시에 어려 있다.
8일 법조계와 재계에 따르면 법무부는 9일 정부과천청사에서 가석방심사위원회를 열어 8·15 광복절 기념일 가석방 규모와 대상자를 심의한다. 현재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이 부회장은 전국 교정시설이 법무부에 제출한 가석방 예비 심사 대상자에 포함됐다.
이 부회장은 올해 1월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 됐다. 재판 과정에서 형기 상당수를 복역한 이 부회장은 지난달 말 형기의 60%를 채워 가석방 요건을 충족했다.
그동안 법무부는 실무상으로 형기의 80% 이상을 복역한 수형자를 예비심사 대상자로 선정해왔으나, 최근 이 기준이 바뀌며 이 부회장도 심사 대상에 올랐다.
이 부회장이 심의에서 '적격' 판정을 받으면 13일께 출소할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이 주춤하는 사이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선 공격적인 투자와 인수ㆍ합병(M&A)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메모리와 비메모리 부문에서 모두 초격차를 유지하겠다는 삼성전자의 ‘비전 2030’ 수성도 녹록지 않을 것이라는 시장 우려도 팽배한 상태다.
업계에선 이 부회장이 복귀하게 된다면 그간 속도를 내지 못했던 대형 투자에 대한 결단이 나올 것으로 내다본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부터 추진해온 미국 신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 증설 계획조차 반년 넘게 확정 짓지 못했다. 미국 증설에 들어가는 자금 20조 원은 삼성전자의 해외 단일투자 규모 중 최대치로, 최고 의사 결정권자 부재 상황에서 결론을 내기 쉽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TSMC와 인텔 등 주요 경쟁사들이 앞다퉈 미국 공장 증설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선으로 이 투자 건에 대한 최종 투자 결정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2016년 하만 인수 후 5년째 멈춰 있는 대형 M&A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는 올해 초 “3년 내 의미 있는 규모의 M&A를 추진하겠다”라고 밝혔고, 지난달엔 “인공지능(AI)ㆍ5세대 이동통신(5G)ㆍ전장 등 다양한 분야 기업을 검토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네덜란드 NXP, 스위스 ST마이크로일렉트로니스 등이 잠재 후보로 거론된다.
한 재계 관계자는 “특히 반도체 사업에서 불가결한 대규모 투자의 경우 당장은 성과가 나지 않을 수도 있는 만큼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하다”라며 “이러한 영역은 전문경영인이 떠맡기엔 분명한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미국 로이터통신 역시 최근 이 부회장의 가석방과 관련해 복수의 삼성 소식통을 인용해 “(이 부회장이) 석방되면 삼성이 주요 투자와 M&A를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재계는 가석방 가능성이 작지 않다고 보면서도,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삼성그룹은 대외적으로 공식 견해 표명을 꺼리며 조심스럽게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만일 가석방이 무산된다면, 삼성그룹은 약 1년 가까이 남은 내년 형기까지 경쟁국 투자에 적기 대처할 수 없는 수세적 상황에 몰린다.
또한, 가석방된다 해도 온전한 경영 활동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은 여전한 리스크다.
가석방은 특별사면과 달리 형 집행을 면제하거나 유죄선고의 효력을 상실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에 따른 5년 취업제한 조치가 적용된다. 해외 출장 등 현장 경영도 제한된다. 경영 활동을 위해선 법무부 장관의 별도 승인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특별사면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재계 일각에선 이어지고 있다. 다음 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만나는 경제 5단체장들도 이 자리에서 이 부회장의 사면을 재차 건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의사 결정을 해야 할 때를 놓친 기업은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라며 "(이 부회장의) 경영 참여가 가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