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동 산업연구원 통상정책실장
국제에너지기구(International Energy Agency)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기자동차는 유럽 자동차 판매의 약 10%를 차지하지만, 미국에서는 2% 미만을 차지하고 있다. 많은 미국인들은 여전히 탄소배출량이 많은 대형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을 선호한다. 전기자동차는 현재 전 세계 자동차 판매의 약 2%를 차지하며, 2030년에는 약 24%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행정명령에서 목표로 내세운 판매 점유율 50%는 세계시장 기준 예상치의 두 배를 넘는 수준이다. 한편 국제청정교통위원회(International Council on Clean Transportation)에 따르면 미국 신차 판매의 약 36%가 전기차라면 2030년에는 약 240만 개의 전기차 충전소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미국에서 대중이 이용할 수 있는 전기차 충전소는 4만1000개 정도이다.
미국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50% 판매 목표를 반기는 분위기이다. 현대자동차, BMW, 닛산, 도요타 등 외국 업체들도 미국의 전기차 판매 목표에 지지를 표명하였고, 자체적인 판매 목표를 제시한 업체도 있다. 이러한 공격적인 EV 판매 목표는 소비자 구매보조금, EV 충전 네트워크, 연구개발(R&D) 투자, 미국 내 EV 제조 및 공급망 확장을 위한 천문학적인 규모의 정부 지원을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 만약 목표가 달성된다면, 2020년에 판매된 차량에 비해 2030년에는 신규 승용차 판매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량을 60% 이상 줄일 수 있다. 미국인들이 운전하는 차량 유형에 근본적인 변화가 나타난다면, 바이든 정부가 내세운 2030년 말까지 탄소배출량을 2005년 대비 50~52%까지 줄이겠다는 야심찬 공약도 달성이 가능하다.
하지만 내연기관 자동차는 미국에서 생산되는 가장 큰 단일 온실가스 배출원으로 미국 전체 탄소배출량의 28%를 차지한다. 그래서 노동조합과 환경단체 등에서는 구속력이 없는 목표에 대한 자동차 제조업체의 자발적 약속을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익숙한 내연기관을 만드는 것에서 배터리로 구동되는 엔진으로 전환하는 것은 생산라인의 작업자에게 도전과제이다. 게다가 근로자들은 전기차의 부품 수가 적기 때문에 조립라인에 필요한 인원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을 걱정한다. 미국 자동차노조(United Auto Workers) 대변인이 바이든의 계획에 지지를 보내면서도 미국 중산층의 임금과 복리후생을 유지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논평을 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아울러 미국 자동차 산업의 변화와 혁신을 촉진하고, 수백만 개의 일자리를 유지하면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서는 막대한 정부 지원 없이는 불가능하다.
자동차 제조업체, 노동자 및 환경단체와 수개월간의 대화를 통해 마련된 일련의 새로운 목표 및 명령은 미국인이 운전하는 차량의 종류를 바꾸고, 화석연료에 대한 국가의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관련 분야에 대한 투자와 결합된 이번 조치들은 친환경 자동차 부문의 제조역량을 확충하고, 미국 내 공급망을 강화하며, 유럽, 중국 등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포석이다. 아울러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행정명령을 통해 가을에 스코틀랜드에서 열리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를 앞두고 있는 다른 국가에 공격적인 기후변화 목표를 설정하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다만 지구 온난화에 대처하기 위한 미 정부의 광범위한 노력이 자국 자동차 산업의 미래를 더 친환경적으로 신속하게 전환하도록 하기에 충분한 동기를 제공하는지 여부는 업계의 대응을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
게다가 바이든 정부의 원대한 목표가 달성되기 위해서는 의회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통과가 임박한 초당적 인프라 법안에는 충전소 전력 공급에 핵심적 요소인 전력망 확충과 업데이트에 730억 달러가 배정되었다. 그리고 EV 충전소 50만 개 구축을 위해 75억 달러의 예산도 확보하였다. 아쉬운 부분은 소비자를 위한 구매 인센티브가 포함되지 않은 점이다. 그러나 의회에서 협의가 진행 중인 추가적인 인프라 법안에는 전기차에 대한 소비자 구매 보조금과 연구개발 투자에 필요한 훨씬 더 많은 예산이 포함되어 있다. 다행인 점은 추가 인프라 법안은 예산 규모가 훨씬 크고, 상원의 예산조정(Budget Reconciliation) 절차를 거칠 경우 여야 합의와 함께 일부 예산은 민주당이 자력으로 통과시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