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난영 과학 칼럼니스트
운동선수들은 인터뷰에서 ‘관중들의 열렬한 응원’을 승리의 요인으로 언급하곤 한다. 다소 의례적인 인사말이지만 지친 상태에서도 자주 응원을 받으면 운동 수행능력이 최대 7%까지 상승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는 걸 보면 아주 마음에 없는 말은 아니다. 이처럼 다른 사람이 보고 있다는 사실이 과제 수행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사회적 촉진(Social Facilitation)’ 혹은 ‘관중효과(Audience effect)’라 부른다. 일례로 이번 올림픽 높이뛰기에 출전해 한국신기록을 세운 우상혁 선수가 관중들의 박수를 유도하는 몸짓을 여러 차례 보인 것도 이 효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의 한 연구에 따르면 관중의 유무가 선수들의 기록에 미치는 영향이 성별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크로스컨트리 스키와 사격의 결합 경기 종목인 바이애슬론(Biathlon)의 남녀 선수들을 대상으로 무관중이 선수들의 기량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분석해본 결과, 남자 선수들의 경우 사격에서는 관중이 있었던 전년도에 비해 더 나은 기량을 보였지만 스키 기록은 뒤떨어진 걸로 나타났다. 사격에서 관중이 없을 때 더 좋은 결과가 나온 건 운동 특성상 순간 집중이 매우 중요하다는 걸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된다. 하지만 여자 선수들의 경기 결과가 남자 선수들과 정반대인 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에 대해 독일 바이애슬론 주니어 대표팀의 심리전문가 아멜리 하인리히(Amelie Heinrich)는 청중의 존재가 성별에 따른 고정관념을 활성화시킬 수도 있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과거에 크로스컨트리 스키는 탐험가들의 중요 이동수단으로 사용되었다. 때문에 이는 남성 스포츠라는 시각이 있는데, 이런 고정관념을 가진 관중들의 존재가 남녀 선수들의 경기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관중이 선수들 기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심리적 부담감’만큼 경기 결과를 좌지우지하는 요소는 아니다. 경기를 보다 보면 당연히 좋은 성적을 내리라 믿었던 선수가 심리적 공포에 몰려 능력과 무관하게 최악의 경기를 펼치는 경우가 있다. 이와 같이 지나친 중압감으로 생각이나 행동이 얼어붙고 극도의 불안이 몰려오는 것을 초킹(choking) 현상이라 한다. 이를 설명하는 가설 중 하나로 ‘과도한 관찰설’이 있다. 간단한 일을 할 때에는 속도를 늦추고 의식적으로 행동하는 게 장점이지만, 복잡한 일을 할 때에는 반대로 무의식적으로 일을 해내야 한다. 그런데 중요한 시합을 앞두고 압박감에 따른 과도한 긴장과 성공에 대한 강한 열망 등이 ‘문제를 해결하게 하는 내부 프로그램’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즉, 이제까지 자동적으로 해오던 사소한 일 하나하나에까지 신경이 쓰인다. 그리고 이는 자동화된 수행을 방해하고, 때문에 타이밍 오류와 같은 실수가 발생한다. 쉽게 말해 과유불급이라고, 과도한 집중이 실패로 이어지는 경우다. 흥미로운 건 숙련된 선수들에게서 이런 현상이 더 자주 발생한다.
전 인구의 20% 정도가 살면서 최소 한 번은 초킹 현상을 경험한다고 한다. 그러니 숨막힐 듯한 중압감이 운동 선수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십자인대 파열이라면 모를까 자신의 위축된 마음을 드러내는 선수들은 거의 없다. 이런 면에서 리우올림픽 4관왕인 시몬 바일스(24세)가 이번 도쿄올림픽에서 여자 기계체조 단체전 경기 중 기권하며 “내 정신건강에 집중해야 했다”고 선언한 건 놀랍기 그지없다. 선수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고통 앞에 솔직할 수 있는 그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동시에 호된 훈련은 물론 심리적 부담을 홀로 견디느라 많은 애를 썼을 올림픽 참가 선수 모두에게 따뜻한 인사를 전하고 싶다. 애썼다고!